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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22. 2020

두바이의 비 vs 부산의 눈

12월에서 2월 사이에 가끔 두바이에도 폭우가 내리는 날이 있다. 폭우가 내리면 시내 도로들은 물론 두바이 공항의 활주로와 주기장 들까지 순식간에 빠르게 침수된다. 도로를 만들 때 배수시설을 충분히 만들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우수관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모래바람에 몇 번 치워도 며칠 못가 다시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원래 모래사막이니 비가 그친 후 조금만 기다리면 물이 자연스럽게 땅속으로 스며들 텐데 문제는 사람이 도로를 만들면서 숨 쉴 틈도 없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덮어버린 탓에 도로의 라운드 어바웃 Round About 회전교차로마다  한번 고인 빗물 웅덩이는 며칠 동안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엔 커다란 물 탱크차를 동원해 빨아들여야 한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사막에는 폭우가 내리면 빗물이 순간 고여 듄 Dune 빗물 호수가 만들어졌다가도  길어야 반나절이면  흔적만 남기고 땅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그 빗물은 신기하게도 수백 킬로 떨어진  오아시스의 야자나무 숲과 갈대밭 밑에서 몇 달간 숨 쉬듯 퐁퐁 솟아난다.

어떤 면에서 부산이 두바이 같았다. 내가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덕두마을 앞 김해공항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던 10년 동안  부산에 눈 다운 눈이 내리는 걸 딱 한번 보았다. 사실  부산 사람들의  운전면허는 사계절 면허가 아니라 눈 안 내린 날만 가능한 제한 면허라 불러야 옳다. 이 말 하면 누가 당장 연락을 할 것 같다. ㅎㅎ

부산은  눈이 단 1센티만 내려도 온 도시가 마비되는 도시였다. 그 당시 부산의 도로엔 모래주머니도 염화칼슘도  비치해두지 않았을뿐더러 운전자들은 스노 체인을 어떻게 두르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차에 이걸 싣고 다니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눈 내린 부산의 비탈길에선 빙판길 운전을 감당할 장비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시민들이 꼼짝없이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김해 공항 활주로라고 사정이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아마 전국 군 공항중에 마징가제트라 불리는 제설장비 'SE88' 이 없는 유일한 곳일 것이다. 다행히 공항공사의 제설차가 몇 대 있어 눈 치우는 시늉은 낼 수 있었다.
어느 해인가 부산에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린 적이 있었다. 그 찔끔 내리는 눈에 새벽부터 결항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기지 작전과에서 눈이 그치는 데로 제설 작업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매 30분 간격으로 인터폰을 울리고 있었다. 

대대에 있던 행정계 선임인 김상사가 이 소리를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뭘 몰라서 저래~ 눈 치우면 안되에~~ ~. 윗사람들이 부산 날씨를 몰라서 저래에~~.  그래도 치우라면 치워야지.  내 팔자야,  그냥 두면 한 시간이면 다 녹을 텐데.,”

그의 말처럼 11시 즈음 눈이 그치자 전장병이 빗자루며  제설삽을 모두 끌어모아  행거 앞 주기장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작업한 끝에 오후 1시가 넘어서면서 운항이 재개되었다. 


그날 오후에 비행대장의 흰색 엑셀을 몰고 활주로 내에 설치된 런웨이 컨트롤 Runway Control 조종사들이 군용기를 통제하는 곳에 근무를 나가다 바라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눈을 치운 곳이나 안치운 곳이나 시간이 지나자 큰 차이가 없었다. 해가 나자 구석의 미쳐 치우지 못했던 눈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괜히 사람이 손을 대어 한쪽에 쌓아둔 눈들만 며칠 동안 남아서 천천히 녹아가다가 결국에는 그 꼴이 보기 싫다는 자휘관의 지적에 사병들이 동원되어 다시 잘게 부수어 활주로 주변에 뿌려야 했으니, 그 사병들이 얼마나 욕을 했을까?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비행단 제설작업 현황을 매시간 파악해 작사 사령관께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주: 현재 SE 88 4대 투입해 제설작업 30프로 완료. 활주로 오픈 예정시각 0000”
“김해 : 지휘관 판단에 의거 눈이 스스로 녹기를 기다리는 중. 활주로 오픈 예정시간.....”


이렇게 보고 올리면 단장님이라도 무사하지 못하셨을 것 같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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