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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28. 2020

조종사의 기종 운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동차처럼 하루는 소나타를 타고 다음날은 소렌토를 타듯 할 수 없다.

일단 너무 복잡하고 크기도 제 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제한치도 모두 달라서 속도계 하나만 보고 달리면 되는 차와 달리 이것저것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 신기종으로 전환하여 레이팅 Rating 기종 자격을 따려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고도 안정적으로 그 기종을 운영하려면 최소 1000시간이 필요한데 이는 1년에서 1년 반이 걸리는 시간이다.


누구나 선호하는 기종이 있다. 어떤 이는 보잉을 어떤 이는 에어버스를 또 어떤 이는 아주 작은 코포레이트 Corporate 작은 비즈니스 제트항공기를 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일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데로 돌아가기보다는 상황에 떠밀려 어쩌면 향후 10년을 타게 될 기종이 결정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한항공에 들어가 보니 첫 이니셜 기종으로 A330을 배정받았다. 중대형기를 바로 타게 되었으니 737을 받았던 동기들보다는 운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소형 민항기를 타본 경험이 없다.  

이후 보잉 777로 기종전환을 했으니 에어버스와 보잉의 대형기 베스트셀러 양기종 레이팅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는 분명 행운아다.

중동의 에미리트로 옮길 때는 흔치 않게 내게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어느 기종을 가고 싶으세요?" 인터뷰 마지막 날 인사부 캐서린이 이 질문을 했을 때 기다렸다듯 777로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만약 에어버스 330을 배정받게 된다면요?"라고 물었다.

여기서 도박을 했다.

"아마 안 올 겁니다. "

이 말이 끝나자마자 다행히 그녀는 피식 웃더니 나를 보잉으로 지정해 주었다.

이후에도 에어버스로 갈 기회가 몇 번 더 있었다. 회사에서 380으로 전환을 희망하는 조종사들에게 한시적으로 전환 기회를 열어주었고 수백 명의 보잉 조종사들이 에어버스로 옮겨갔다.

그때도 나는 777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부기장 때 한번 기장 때 한번 두 번의 기회가 지나가는걸 그냥 흘려보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의 모든 380이 그라운드 된 현실에서 내가 내린 한 번의 '도박'과 두 번의 '선택' 을 돌아본다  


기종운이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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