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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북극 상공에서의 항법

북극 상공

두바이를 출발한 달라스행 777이 방금 러시아의 무르만스크 FIR(비행정보 구역)을 막 벗어나 북극해의 ICELAND RADIO구역으로 진입을 했다. CRC(승무원 휴식공간)에서 꿀 같은 6시간 50분의 단잠을 자고 CAPT JAY가 막 그의 부기장과 함께 조종석에 돌아왔다.

조종석 창밖은 두바이를 떠나던 7시간 전처럼 아직도 어둑한 밤이다. 기본적인 비행 진행상황을 CAPT BD와 그의 부기장 JOHN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이제 막 자리에 앉은 그는 늘 그러하듯 항공기 상태를 하나씩 다시 점검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앞으로 진행할 FMC(항법 컴퓨터) 내의 좌표를 다시 비행계획서와 하나씩 꼼꼼히 비교한다. 지금부터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그에게 있다. 이 이전 크루가 만들어 둔 실수라 하더라도 그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달이 없는 오늘 그의 발밑은 어느 한 구석 빛 자락도 새어 나오지 않는 순도 100 퍼센트의 검은 얼음바다가 음산하게 펼쳐져 있다. 현재 외기 온도는 영하 50도. 777은 음속의 0.83배의 속도로 북극 상공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 지금 만약 바로 이 근처 얼음 위 어느 곳에 바로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두 살아 남기는 힘들겠어’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든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모두 저체온증으로 버티기 힘들 것이다. 보조엔진이 작동되어 항공기 내 온도를 유지시켜주지 못한다면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

777이 도달하게 될 위도상 최고점은 N86 W040 지점이다. 위도 1도가 60마일이므로 90도에서 4도의 차이 즉 북극점으로부터 남쪽 대서양 방향으로 240 노티컬 마일 떨어진 지점을 스치듯 지나고 다시 항공기는 그 자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그대로 윙을 수평으로 유지한 채, 컴퍼스 헤딩만 북북서에서 남남동까지 약 2시간에 걸쳐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조금 전 N82도 지점을 지난 777은 이제 위성통신이 미치지 못하는 BLACKOUT 구역에 진입한 상태다. DATA 통신도 위성통신 불가능 지역에 도달하자 동시에 먹통이 되어버린다. 이제 그들이 가진 외부세계와의 통신이 가능한 장비는 단 하나, 아주 오래된 구식 통신장비인 두 개의 HF만이 유일하다.

그의 눈이 순간 UPPER CONTROL PANEL의 ELT(EMERGENCY LOCATION TRANSMITTER)의 위치를 찾는다. 최악의 비상이 발생해 DITCHING(비상착륙)이 발생할 상황이라면 저것부터 작동시켜야 한다.

CAPT JAY가 점검을 마치고 이제 각각의 웨이포인트가 1시간 가까이에 달하는 이 구간에서 무료함을 달래려 부기장을 괴롭히기로 맘을 먹고는 씩 웃으며 그의 부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필립! 너 737 탔다고 했지?"

필립은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으로 지금은 파산한 한 독일 로코스 트항 공사에서 737을 그리고 얼마 전까진 에티하드에서 777과 787을 타다가 회사를 옮긴지는 약 6개월 된 신참이다. 그렇지만 에티하드에서 777을 3년 가까이 탔기 때문에 경력면에서는 선임 부기장에 속한다.

필립은 씩 웃으며 JAY를 바라본다.

"북극점에 가까운 지금 이 상황에서, NAV ADIRU INERTIAL(내비게이션의 기초자료를 재공 하는 자이로 고장)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 본 적 있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경험 많은 777 부기장 필립은 CAPT JAY의 도전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역시 경험 있는 777 부기장답게 비슷한 답을 바로 내놓는다.

"일단 LNAV(항공기 자체 항법)가 끊어지겠지요. 그리고 이곳이 MAGNETIC UNRELIABLE AREA(나침판이 작동되지 않는 구역) 이기 때문에 HEADING 이 MAGNETIC 이 아닌 TRUE HEADING으로 시현될 거고요"

그리고 그가 이미 자동적으로 ND계기상에 바뀌어 있는 녹색 TRUE 글자를 가리킨다.

"아주 좋았어, 그러면 MAIN 자이로가 고장이 나면 그의 BACKUP인 SAARU가 바로 그를 대신하기에 문제는 없겠지 그리고 잘 알다시피 수분 후에는 조종사가 매뉴얼로 현재 헤딩을 입력해 주어야 하는 절차가 있잖아?"

JAY의 이 말에 부기장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알다시피 지금부터 우리는 북극에 근점 하면서 엄청난 율로 HEADING의 변화를 겪고 있지. 거의 매분 내가 변화된 HEADING에 맞추기 위해서 HEADING BUG를 수정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좀 더 심오한 질문에 이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제 긴장하고 있는 게 보인다.

속으로 이 상황을 무척 즐기고 있는 CAPT JAY가 중간중간 시스템 설명을 해가며 이제 세 번째 질문을 던진다.

"이런 곳에서는 HEADING이나 TRACK모드를 선택한다면 어쩌면 매분마다 새로 변경되는 새로운 값을 입력해 줘야 하는 데 그것이 가능할까? 극단적인 예로 만약 우리 777이 북극점 정상 공을 통과한다면 진행방향 HEADING이 360에서 일순간 180으로 바뀔 텐데 그러면 그 순간에 항공기가 어떻게 반응을 할까? 아주 빠르게 FMC에 바뀐 헤딩을 입력해 주지 못하면 항공기는 선회를 시작해서 다시 뒤로 그리고 또다시 반대로 이렇게 북극점 상공에서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이론상으로 벌어지지 않을까?"

부기장 필립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번진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CAPT JAY가 속으로 웃으며 스스로 답을 준다.
"초기 GYRO 이상으로 LNAV(자체 항법)가 FAIL 되었을 때 바로 HEADING MODE로 변경을 안 시키면 어떨까?"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가는 사이 필립은 눈을 동그랗게 올려 뜨고는 호기심이 가득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다.

"또는 FLIGHT DIRECTOR을 OFF 하고 AUTO PILOT을 연결해 보면 어떨까?"

물론 JAY는 요즘 부기장들이 이런 일을 해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이 질문의 답을 내지 못할 것이란 것도 예상을 하고 시작한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비행훈련에는 더 이상 이런 시범은 남아있지 않다.

"FLIGHT DIRECTOR을 OFF 한 상태에서 AUTO PILOT을 연결하면 항공기는 BASIC PITCH MODE로 들어가지 않을까? 윙 레벨이 된 상태에서 고도를 정확히 유지해 강하나 상승이 없는 상태에서 자동비행장치를 연결하면 그 자세 그대로 유지한 채 이후에는 자침 부정확 지역인 이곳에서 외부 HEADING변화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비행방향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ND(NAVIGATION DISPLAY)계 기상에 시현된 우리의 비행경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다시 AUTO PILOT을 풀고 방향을 틀어준 뒤 다시 연결하면 안전하게 이 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AUTO PILOT과 FLIGHT DIRECTOR 모두 풀고 매뉴얼로 비행해도 되고~."

미소를 지으며 CAPT JAY가 부기장을 보라보는 사이 777의 HEADING이 어느 사이 서서히 돌아서 남쪽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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