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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15. 2020

임계거리와 게이클럽




임계 거리(Critical Distance)라는 개념은 스위스의 한 동물학자가 동물원에서 처음 발견했다. 포식자 동물이나 사람이 이 거리 이내로 다가가면 동물들이 불안을 느끼고 달아나는 거리를 의미한다.

이 임계 거리가 동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람도 이 본능에 충실하다.

조심성이 많은 '초식성'인 나는 이 임계 거리가 타인들에 비해 조금 더 먼 편이다. 예를 들어 주말에 사람들이 붐비는 몰에는 가급적 가지 않는다. 또 차를 몰 때 앞차와의 간격을  늘 충분히 벌려야 편안하다. 교차로에서 정차할 때에도 나는 앞차의 번호판과 타이어가 보일 정도로 멀치감치 차를 정차한다. 나는 임계 거리가 보통사람들보다 좀 더 큰 사람이다. 이런 성향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대학에서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서양인들은 이 임계 거리가 동양인들보다 넓으니 조심해야 한다.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히면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 고 원어민 교수들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졸업 후에 이제는 수십 년 동안 이 서양인들 속에서 살아보니 이 말이 틀리지 않다. 좁은 조종실에서 두 명이 서로 교차하며 살짝 손이라도 스치면 여지없이 "I'm sorry"가 튀어나온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이들처럼 서양인의 임계 거리를 내면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과밀한 사회에서 나처럼 차간 거리를 유지하면 당장 눈치를 받게 된다. 그렇지만 미국 앨라배마 같은 한적한 도시에서는 뒤따르던 차 바로 뒤에 누군가 한국처럼 바싹 가져다 붙이면 앞차 운전자는 당장 불안해 어쩔 줄 모를 것이다.

뉴욕 타임 스퀘어에 가면 '발 디딜 틈이 없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붐빈다. 한국의 이태원이나 홍콩의 도심과 다르지 않다.  이곳에서는 매번 타인과 어깨가 닿을 때마다 "I'm Sorry"를 연발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국가나 문화, 인종이 구별 짓는 차이가 아닌 단지 내가 어떠한 환경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이렇게 길게 임계 거리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나의 시각에서는 바로 이 임계 거리의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곳에서 종종 동성애자(Homo Sexual)로 여겨지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조종사 중에도 있고 캐빈 승무원 중에도 있다. 보통 양성애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알아채기 힘든 반면, 대신 남자들 중에 여성성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결코 놓칠 수 없는 행동특성을 보인다.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 행동을 보이고 말의 톤이나 헤어스타일 그리고 옷 매무새나 걷는 모양까지 여성성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이들 개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본 적도 없고 기본적으로 이들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직장 내에서도 기장으로서 이들을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하루는 조종실을 담당하는 이가 태국 출신의 30대 초반의 아담한 체구의 남자 승무원이었다.

비행을 준비하며 오가는 그의 모습과 말투에서 바로 그가 호모 섹슈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 친구들의 가장 큰 장점은 마치 수다가 많은 소녀 같은 아름다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늘 누구에게나 친근해게 굴어서 동료들과도 전혀 마찰이 없고 무엇보다도 일을 찾아서 하는 살림꾼 같다보니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

순항 중에 토일렛 브레이크 Toilet Break(화장실에 가는 시간)를 겸해서 객실로 나왔을 때 벌어진 일이다.

겔리에 있던 두세 명의 승무원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불쑥 이 친구가 이야기에 끼어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말을 건네며 내 코앞 30 센티정도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다가왔다. 속으로 당황을 하면서도 바로 뒤로 물러서거나 하지는 않았다. 혹 상처를 줄까 싶어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마치고 조종실로 돌아와서는 비행이 끝날 때까지 객실로 가급적 나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잘못된 신호를 주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나는 보편적인 이성애자(Hetero Sexual, Straight) 이다.

이성 간에도 친절을 상대방에 대한 의도적인 성적 관심 표현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흔한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이 나와 유지하려는 근접한 거리가 나는 불편합니다.'라고 점잖게 뒤로 물러서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게이 클럽'논쟁을 

이 처럼 동성애라는 시각에서 보지 말고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기 보호를 위해 가지고 있는 '임계 거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아 두려운 사람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차별하는 악의적 의미를 지녔다고 할 것이면 '게이 클럽' 이 아니라 '동성애자 클럽'이라고 지칭하면 비판하지 않을 것인가?

존중은 소수이기에 당연히 일방적으로 받아야 하는 가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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