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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22. 2020

폭풍속으로


 

두 개의 엔진 모두 부드럽게 시동이 걸리자, 거의 동시에 푸시 백도 끝이 났다.

항공기의 외부에 장착되어 각각 두 개의 메인기어와 엔진 그리고 노즈 기어 부분을 비추던 카메라 영상이 빗물에 번지고 있었다. 노즈 기어 옆에서 인터폰을 연결한 줄을 잡고 따라 걷고 있던 중국인 정비사도 같이 멈추어 서는 것이 보이더니 바로 그의 콜이 올라왔다.

"푸시 백 컴플리트. 셋 파킹 브레이크 플리즈. Push back Completes. Set Parking Brake Please(푸시 백이 끝났습니다. 파킹 브레이크를 걸어주세요."

기장 피에르가 두발로 양쪽 러더 페덜 Rudder Pedal 위 브레이크를 깊게 올려 밟으면서 오른손을 내려 센터 페더스털에 있는 브레이크 레버를 지긋이 당겨 올리고는

"브레이크 셋! 위 해브 투 굿 스타트, 유 메이 디스커넥트 얼 그라운드 이퀴프먼트. 굿데이. Brake Set. We have two good start. You may disconnect all ground equipment. Good day. 시동이 모두 잘 걸렸습니다. 모든 장비를 제거하셔도 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때 예상치 못한 다급한 콜이 올라왔다.

"파킹 브레이크 라이트가 안 들어왔어요. 셋한것이 맞나요?"

"우리 인디켄이션 Indication 지시계 상 으로는 셋한것으로 나와 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겠습니다. 장비를 제거합니다. 좋은 비행 되십시오. 굿 바이."

좀 전부터 더욱 거세진 빗 속에서 정비사가 항공기의 왼쪽 날개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피에르의 손과 발은 익숙하게 천천히 좌우 위아래로 컨트롤 휠을 움직이며 '컨트롤 첵'을 수행하는 와중에 부기장 마르셀을 바라보지도 않은채 여전히 시선은 바깥에 서 있는 정비사들에게 고정한 채 혼자 중얼거렸다.

"파킹 브레이크 라이트 인옵 INOP부작 동이라고 테크 로그 Tech Log (정비 요구사항을 기록하는 책)에 나중에 기입하자. 혹시 잊으면 조언해 줘."

그 사이에 비는 더욱 거세져 이제는 거칠게 조종실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번개까지 번쩍거리고 동시에 '꾸르릉' 소리가 상하이 푸동공항의 동쪽 승객 터미널을 때리고는 메아리치듯 돌아 나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지상직원들이 야외 작업을 하다니...

"여긴 번개가 쳐도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나 보네."

어둠 속에서 빗방울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비사가 랜딩기어 핀을 제거했다는 신호로 기어 핀을 잡은 왼손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의 토치 Torch (손전등)로 비추는 것이 사이드 윈도를 통해 보였다.

피에르는 그의 얼굴이 잘 밖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사이드 창문 쪽에 맵 라이트를 밝히고 그의 왼손을 들어 엄지를 세운 '썸 업 Thumb Up' 사인을 보냈다.

벌써 두 달째 한 달에 한두 번 많지 않은 비행 스케줄이 나오다 보니 오늘은 부기장의 랜딩 리슨시 Recency( 3달에 최소 3번 이착륙해야 한다는 법적요구사항)가 거의 만료될 지경에 이르러서 비행에 나오기 전 크루 듀티 매니저 Crew Duty Manager가 오늘은 가능하면 부기장 마르셀에게 이착륙 기회를 주라는 당부를 듣고 나온 터였다. 날씨가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기장 피에르는 아직까지 휠을 거두어들여 자신이 이륙을 하겠다는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두바이로 향하는 방역물품을 화물칸에 가득 채운 290톤 무개의 777-300ER이 택시 허가를 얻은 뒤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륙할 활주로까지 약 2킬로 정도 택싱 Taxing(항공기가 지상을 바퀴로 굴러 이동하는 것을 의미)을 하는 동안에도 기상을 점검하기 위해 미리 작동시킨 기상 레이더가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 위에 지금 온통 벌겋게 지금 폭풍의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이때 오른쪽으로 거센 빗줄기를 뚫고 항공기 한대가 이륙을 하는 것이 보였다. A320이다. 이렇다면 좋은 징조다.

만약 저 위 검은 하늘 위에 윈드 쉬어나 우박 같은 것을 만난다면 지금 이륙한 조종사들은 바로 파이랩 Pirep(조종사 기상보고)와 함께 비상을 선포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상하이 푸동공항의 남쪽 하늘의 기상이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의미일 수 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긴장하고 있던 피에르는 다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앞선 항공기의 파이렙에 무관하게, 활주로에 정대한 이후에 기상레이더의 반사파 이미지가 모두 빨갛게 시현된다면(극심한 강수를 의미) 그는 이륙을 중지하고 활주로를 벗어나 대기해야 한다. 회사의 안전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두운 조명과 와이퍼가 한동안 간신히 밀어내고 있는 빗물에 가려서 그간 알지 못했지만 조금 후에 그들 앞에 하이난 항공의 신형 A350 항공기가 이륙 대기 중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운이 좋다.

이제 이 350 기장이 이륙을 결정해주면 다시 한번 오늘 밤 지연 없이 바로 이륙이 가능한 기상이라는 반증이 된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타워 관제사와 하이난 기장 간에 중국어로 오가는 대화가 한참을 이어졌다.

그가 앞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잠시 후 마침내 하이난 350의 랜딩 라이트가 진입할 활주로 입구를 밝히고 스트로브 라이트의 밝은 섬광이 빗속에서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그가 조금씩 활주로로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마침내 중국인 기장이 이륙을 결심한 것이다.

"에미리트 000 아유 레디 포 디파춰? Are you ready for Departure? 이륙할 준비가 되었나요?"

기대했던 질문이었다. 공항 상공에 씨비 CB(찰리 브라보라고도 읽는다. 썬더 스톰을 의미함)가 바로 위치해 폭우와 번개를 몰아 치는 순간이라 어느 누구라도 이륙 결심이 쉽지 않다.

라디오를 잡고 있던 기장이 바로 자신의 인텐션 Intention의도를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는 활주로상에 정지해서 약 1에서 2분 정도 상황을 판단하고 이륙할지 결정하겠습니다. "

이 말을 하면서 피에르는 2분이면 앞서 이륙할 하이난 350이 이륙 직후에 저고도에서 위드 쉬어를 만나거나 하면 관제사에게 보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세크러파이스 힘! 위아 러키! Sacrfise him! We are lucky! 그를 먼저 시험해 보자. 우린 운이 좋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활주로에 먼저 들어가 정대하는 듯 보였던 350이 다시 고개를 돌려 활주로를 개방하더니 잠시 후 그들의 뒤로 돌아 들어와 순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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