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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23. 2020

다시 CRM

Crew Resource Management

에어라인 기장인 나에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다. "도대체 CRM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 것인가요?"


'Crew Resource Management'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해보면 크루들의 인적 자원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이러면 결국 리더십이나 회사의 인사 노무관리(HR: Human Resource) 매니지먼트와 같은 의미로 보인다. 


단지 관리가 이루어지는 대상이 항공기 안에서 근무하는 원 팀(One Team) 크루들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결국은 리더십과 팔로어쉽에 대한 이야기 일수밖에 없다. 


오늘의 이 CRM의 가장 좋은 예로 종종 언급하는 '존중'의 개념이 녹아있는 세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어떻게 '존중'이 좋은 CRM의 출발점이 되는지 살펴보자. 


겨울철이면 사나운 블리자드 blizzard 눈폭풍으로 조종사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곧 미국의 시카고에서 출발하려는 민항기 기내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 본다. 


날개 위에 쌓였던 눈과 얼음을 제거하는 '디아이싱'과 다시 얼지 않도록 코팅액을 뿌려주는 '안티 아이싱' 작업을 마친 뒤 항공기는 이제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 아직 눈이 내리고 있어서 기장은 마음이 급하다.  '방빙 용액의 홀드오버 타임 Holdover Time지속시간'이 지나버리기 전에 이륙을 서둘러야 한다. 

그때 인터폰이 울린다. 사무장이다.

"기장님 이커너미 클래스 좌측 L3 도어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아직 날개 위에 얼음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는데 어쩌죠?"


여기서 기장은 결정해야 한다. 

"아, 그거 제거 후에도 조금씩 남아 있고 그래요." 또는 "방빙 용액이 뿌려져서 이륙을 하면 바람에 날려갈 거라 괜찮아요."라고 얘기해주면 아마도 사무장이나 L3 도어를 담당하는 승무원도 마지못해 그럴 수 있겠구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그냥 이륙을 해서 안전하게 시카고를 떠난다 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날개 위의 얼음을 보고했던 승무원은 그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다시 보고를 할까?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참이 용기를 내어 사무장에게 보고를 하고 그 사무장이 정말 하기 싫은 일인 지상에서 이륙을 위해 택싱 하는 상황에서 기장에게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 보여요!'라고 보고까지 했는데 기장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넘어간 상황이다. 


두 번째 조금 다른 상황을 들여다보자.

이륙을 위해 택싱 중에 사무장에게서 인터폰이 왔다. 

"기장님 지금 리어 겔리 Rear Galley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어떻게 할까요? 오븐이나 마이크로 웨이브는 모두 정상인데요.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는 파악이 안돼요."


이럴 때 기장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단순히 램프로 돌아가거나 무시하고 이륙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장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아직 우리 이륙 순서가 되려면 10여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냄새가 나는 위치를 찾아 주세요. 10분 후에 만약 아직도 냄새가 나고 있고 그 소스 Source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 램프로 돌아가도록 하고요. 만약 다행히 냄새가 사라지고 당장 눈에 보이는 화재나 연기의 증상이 없다면 이륙을 하면 어떨까요? 10분 안에는 이륙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고 뒤에 겔리에 직접 가셔서 상황을 판단하시고 저에게 알려주세요."


세 번째 마지막 이야기는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어제 그제 비행을 하려 항공기에 동료들과 콤비 크루 버스를 타고 도착해보니 역시 오늘도 번쩍이는 검은색 BMW가 항공기 L1 도어에 연결된 계단 차 옆에 주차되어 있고 그 안에 검은 정장을 입은 운전사가 앉아있다. 그와 가볍게 목례를 나누고 계단을 올라가 보니 약 40대로 보이는 남자 사무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맞는다. 

"기장님 모든 셋업이 완료되었고요. 준비되시는 데로 제가 브리핑을 드릴게요."

상하이 푸동을 다녀오는 착륙 후 2시간의 그라운드 타임을 포함하면 17시간이 넘어가는 긴 비행이라 총 4명의 조종사들이 지금 항공기에 올라와 있다. 첫 번째 구간을 운항하는 나와 부기장은 칵핏에 들어가 가방을 정리하고 나머지 두 명은 아직 객실에 남아 있다. 

순간 나는 이미 이전의 브리핑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냥 밖에 있는 두 명의 동료들에게 대신 브리핑을 대신 받아 달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아직 오른쪽 부기장석에서 가방을 정리하며 구석구석 파우치와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부기장 모하메드를 불렀다. 

"우리 같이 나가서 브리핑을 받고 돌아올까?"

"네. 기장님" 

두말없이 그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따라나섰다. 

지체 없이 조종실에서 나오는 우리 둘을 보고 나머지 두 명의 조종사들과 사무장이 바로 눈치를 채고 서로를 마주하고 둥그렇게 모여 섰다. 

"기장님. 그러면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

사무장은 그가 준비한 몇 분간의 브리핑을 꼼꼼하게 진행하며 완벽히 준비가 된 객실 상황에 대해 크루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사무장님. 오늘 나와주셔서 우리 모두 무척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모두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도움이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안전히 다녀오십시오. 기장님."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한층 더 환하게 번진다. 진심은 숨길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남자 사무장은 자신의 일을 더없이 사랑하고 있다. 

그가 준비한 브리핑을 두 명의 기장과 두 명의 부기장 총 4명의 조종사들이 흐트러짐 없이 그의 앞에서 경청해 주었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크루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CRM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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