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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MEL에 대하여

조종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규정서

MEL(MINIMUM EQUIPMENT LIST)에 대하여

에어라인 조종 사치고 이 책자 때문에 한 번쯤 고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민항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 이 책을 잘못 적용해 낭패를 본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심한 경우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얼마 전 A항공사에 엔진 관련하여 국토부에서 부과한 과징금도 이 책자에서 비롯한 사건이다.
민항기들은 모든 장비가 완벽히 작동되는 상태에서 출발하면 좋겠지만 부득이하게도 결함을 고칠 시간이 부족하거나 파트가 없어서 이 MEL을 근거로 DEFER(고치지 않고 미루어 두고)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금까지 CAPT JAY가 최대로 DEFER 했던 항목 개수는 총 7가지 항목을 한 비행에서 수정(정비) 하지 못하고 출발한 적이 있다.
이제 기장으로 2000시간 정도 777을 운영해보니(물론 나의 총 777시간은 이제 8000시간이 넘는다.)이 MEL에 대한 그간의 나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비행을 할 때는 이 난해하고 중요한 규정이 영어로 쓰여있다 보니 우리들만이 겪는 문제이겠거니 생각을 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또는 적어도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 국가의 조종사나 정비사들은 참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에미리트에서 이제 8년째 이들과 같이 섞여 운항을 해보니 그간의 나의 생각이 부질없는 기우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MEL의 문제는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안 쓰고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규정을 적용하는 센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한 번은 기장석 DISPLAY에 특정 계통 SYNOPTIC이 제대로 시현되지 않는 결함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를 수정해 줄 것을 엔지니어에게 요구하였다. 이 엔지니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MS (메인 컴퓨터)를 2번이나 RESET 하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는 출발 20분 전이라는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은 자신들의 브리핑에 정신이 팔려있고 정비사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결함 항목을 고치려 컴퓨터 RESET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항로 기장자격의 AUGMANTEE CAPTAIN으로 간섭을 최소화하려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MEL을 찾아 들이밀었다. 더 이상 RESET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며, 이제 한번 더 하면, 한 번에 20분이 소요되는 이과정 때문에 출발이 지연될 것이 뻔하다고 말도 건넸다.
MEL에 의하면 특정 계통의 SYNOPTIC이 다른 쪽 DISPLAY에 정상적으로 시현될 경우 합법적으로 DEFER 하고 출발이 가능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기장의 MANAGEMENT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 고장 났으니 고쳐주세요’하고 던져주고는 나 몰라라 하며 자신의 일만 하면 이런 결과가 벌어진다. 한 번만 MEL을 같이 찾아보고 의견을 나누었다면 쉽게 적용 가능한 항목을 찾아낼 수 있음에도, 내일과 네일을 나누어 버렸기 때문에 40분이라는 시간을 엔지니어가 허비하게 한 경우다.
두 번째는 EFB(ELECTORIC FLIGHT BAG)이라는 항공기 장착 TABLET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역시 나는 AUGMANTEE CAPTAIN이었고 뒤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장석 DISPLAY가 STYLUS PEN이 인식이 안 되는 문제를 보였고, 정비사는 땀을 흘리며 RESET을 반복하고 있었다. 역시 기장과 부기장은 자신들의 JOB FLOW만을 따라 브리핑에만 열심이고 정비사는 MEL을 한번 보고는 2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에 감히 어떤 장이 해당이 되는지를 판단하기를 포기한 채 필사적으로 RESET만을 시도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JAY가 나서서 그러지 말고 MEL에 있는 EFB INOPERATIVE 절차를 적용해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처리하라고 눈치를 주었으나, 눈치 없는 이분은 결국 두바이 정비본부에 국제전화까지 돌리는 것이 아닌가. 전화기 넘어 두바이 정비본부에서는 왜 EFB가 완전히 INOPERATIVE하지 않은데 그 항목을 적용을 하는지 동의할 수 없다고 우기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전화를 넘겨달라고 요구한 나는 ‘왜 일을 불필요하게 어렵게 만드는 것인가’라고 말을 하였고 메니져로 보이는 영국 엑센트의 두바이 엔지니어는 무엇이 불필요하게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냐고 오히려 반문을 한다. 답답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게도 하고 이때 불쑥 튀어나온 말은 “그럼 정비본부에서 지금 내가 제시한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서 알려주세요. 출발 10분 전입니다. 기다릴게요”
이후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전화를 정비사에게 넘겨주었다.
잠시 더 대화를 주고받던 정비사가 대화를 끝내고 나서는 “정비본부에서 동의했습니다. 기장님 뜻대로 INOP상태로 MEL을 처리하는데 반대하지 않는 답니다.”
이 두 번의 경우 모두 기장이 내일과 네일을 나누어 MEL을 전적으로 정비사에게 넘겨버려서 불필요하게 발생한 문제다. 이것에는 평소 난해한 MEL에 대해서 멀리하고 싶은 기장의 심리도 그 이면에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MEL이 어렵다고 멀리해서는 안 되는 규정이고 특히 OUT STATION에서는 777 기종에 특화되지 않은 외주 정비사가 많다 보니 이들의 기종에 대한 이해도가 직접 운용하는 조종사보다 낮은 경우도 생긴다. 통상 기체와 항전 두 개로 구분된 정비체계도 OUT STATION에선 엔지니어 한 명이 맡다 보니 항전 계통에 대해선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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