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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조종사의 피로에 대하여

팔로워 중 한 분이 최근 댓글에서


“기장님 안주 무세요? 조종사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했을 때 잠시 ‘아~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안 하고 있었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금세 실소하고 말았다.


조종사는 규칙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직업이 아니던가.


나오는 스케줄(ROSTER)에 따라서 한 달에 한두 번은 늘 자정에 출근을 해야 하고 또 한 달에 서너 번은 새벽녘에 두바이에 착륙을 한다. 시차의 극복 문제는 이제 극복이라는 말이 쌩둥 맞게 느껴질 정도로 에어라인 조종사에게는 그냥 생활 그 자체다.


이런 들쭉날쭉한 시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각기 다른 테크닉으로 분투하고 있지만 딱히 정답은 없는 것 같다. JAY가 따르는 시차 극복법은 그냥 내 몸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다. 졸리면 자고 한밤중이라도 정신이 맑으면 일어나 비행자료를 정리하거나 다음 비행을 준비하기도 한다. 한때는 수면제를 처방받기도 하고 술을 약간 먹어보기도 하였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단 며칠 사이 깨달았다. 이제는 그저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원하는 데로 들어주는 것이 나의 시차 극복법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있었다. 0120분 PICKUP시간인 야간 비행이었다. 에미리트는 집 앞까지 출근 택시가 배차되고 PICKUP SERVICE를 제공해준다. 통상 시계를 여러 개 맞추어 두고 초저녁에 잠에 들어 픽업 약 한 시간 반 전에 일어나는 페턴인데 무슨 일인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결에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바로 문제가 생긴 걸 알았다. 전화기 너머로 택시가 밖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지금 시각이 픽업 시간 PLUS 15분이라는 말이 들려왔을 때 허겁지겁 십 분만 주면 준비해 나갈 수 있다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이미 다른 크루도 탑승해 있어 더 이상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말과 다행히 새로이 배차를 해주겠단다.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 JAY는 연신 시계를 보며 빌라 밖에서 기다려보지만 내가 시간에 맞추어 SHOWUP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가면 빠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돌려 CREW TRANSPORT(배차 부서)에 의도를 얘기했을 때 그쪽에서 하는 말에 나는 ‘아 이 회사가 시스템이 참 잘 돌아가는구나’ 하고 느꼈다.
“기장님 지금 당황하셔서 직접 운전하시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5분 내에 차량이 도착하니 걱정하시 마시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도착한 본사에서 바로 CREW DUTY MANAGER에게 문제를 일으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순간 또 한 번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
“기장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저도 수업에 늦어 본 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우리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오늘 사업에 늦지도 않으셨어요. 걱정 마시고 비행 안전히 다녀오세요”
나는 아직 사람 냄새가 남아있는 회사에 일하고 있어서 좋다.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의 상식과 회사의 상식 간에 그 차이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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