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님, 뭄바이 관제소에서 우릴 부르는데요?"
잠시 조종실에 들어온 레바논 출신 사무장 모하메드와 죽이 잘 맞아서 그렇게 셋이서 깔깔거리며 얘기하느라 뭄바이 관제소에서 우릴 부르는 걸 놓쳤나 보다. 그런데 그걸 듣고 알려준 이가 사무장이다.
"어떻게 그걸 들었죠? 라디오를 지금 팔로우하고 있었던 건가요?"
빙긋 웃더니 그가
" 저 자가용 조종삽니다. 가끔 유지 비행도 해요."
그가 그러고는 늘어놓은 얘기가 대단하다. 웬만한 부기장만큼 777의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비행마다 조종실에 들어와 모르는 건 물어보며 지난 시절이 10년이 넘다 보니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런 그를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 회사에서 격주로 발간되는 사내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가 났다. 1년에 한 번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Chairman's Nazim Award, 한국말로 하면 회장 표창인데, 그가 이 시상식에서 대표로 회장 표창을 받는 사진과 함께였다.
그가 이 상을 받게 된 상황은 다음과 같다.
두바이로 돌아오는 777 비행 편에 부기장이 갑자기 의식을 상실했다. 그는 평상시 친분이 있던(그가 워낙 사람이 좋아서 인맥이 넓었으리라) 기장에게 부기장을 대신해 라디오라도 부기장석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니 허락해 준다면 같이 비행하고 싶다고 청했고, 기장이 이를 받아들였단다. 그렇게 졸지에 사무장이 부기장석에 앉아 비상 걸린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륙시켰다. 그가 10년 동안 비행마다 그렇게 줄기차게 물어보고 공부하며 익힌 777 비행을 실제 부기장 좌석에서 같이 착륙을 시켰으니 그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던 걸까? 그렇게 그는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기회를 살려 777 부기장이 되어 착륙을 경험했고 더불어 회사의 최고상인 회장 표창을 받게 되어서 더욱 유명인사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그의 손금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의 오른 손바닥 중앙에는 작은 십자가 손금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 상징은 위기에서 자신을 구하는 손금이자, 종교나 영적인 것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실 그는 25살까지 신실한 무슬림으로 모스크의 '이맘'이 되기 위해 공부를 했었단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에 객실 승무원이 되었지만, 그에겐 손금에서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이 일어났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