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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선임 편대장

JAY가 256 비행대대의 선임 부조종사이던 시절, 어느 해인가 선임 편대장이 아주 괄괄하신 분이었다. 후배들과 훈련비행을 마치고 대대에 들어올 때면 어김없이 얼굴이 벌게져서는 한바탕 난리를 벌였다. 작전계 앞에서 어린 중위들과 대위들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날이 연일 계속되다 보니 후배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성격이 불과 같아서 당신의 마음에 안 들면 바로 고함이 나오고 이때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체벌에 가까운 시간이 비행 중에도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조종사였다. 이러다 보니 특히 중위들은 하루 종일 DO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디에 들 숨었는지 작전계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그럴 용기가 났는지 하루는 더는 참지 못하고 선임 부조종사로서 후배들을 대신해 선장(선임 편대장) 실을 찾았다.

똑똑-  

“무슨 일이야?”


조종복이 터질 듯 덩치가 좋았던 이분이 슬쩍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시선을 읽던 신문에 돌린 채 무심한 듯 물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단둘이 조용히 드릴 말씀이라 지금 찾아왔습니다”


이 말에 흥미가 끌렸던지, “그래, 이리 와 앉아” 하며 그가 신문을 바로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왔습니다. 훈련비행에 대한 사항입니다. 편대장님과 비행을 하는 부조종사들이 매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려는 의도임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지만 받아들이는 부조종사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선배님이 부조종사들을 조금 다르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용기를 내어 시작했지만 사실 속으로 나는 이 일이 어떻게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어서 몹시 떨고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공군 비행대대에서의 훈련이라는 것은 선배에게서 후배로 비행의 기술과 지식이 전수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편대장님도 지금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그 이전의 선배님들로부터 전수받은 것 아닙니까? 이를 온전하게 후배들에게 전달하여야 할 책임이 있으십니다. 이점에서 저는 선배님이 후배들에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까지 입 밖으로 나온 이상 주워 담을 순 없었다. 하던 말은 확실히 매듭을 짓고 그 이후에 처분을 기다리자는 단순한 계획이었다.


“그 의도야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편대장님의 고함과 질책 그리고 작전계 앞과 전체 브리핑실에서 특정 후배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시는 행위는 오히려 훈련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들로부터 배우신 기술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훈련의 방식을 바꿔주시기를 충심으로 부탁드립니다. “


이 말을 끝으로 앉은 자세이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로부터 도전을 받은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것이기에 순간 아마도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도 하셨을 것 같다.


잠시 후 그가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잘 알아 들었어. 네 말이 옳다. 내가 고칠게! “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 대답에, 그때까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바라본 그의 얼굴에는 싱글싱글 미소가 가득했다. 지금도 그가 나를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던 그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잘 알았으니까 나가봐!"


이 일이 있고 나서 이분은 1년 후 대대를 떠날 때까지 다시는 후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질책하거나 작전계 앞에서 큰소리로 나무라지 않았다. 이후 그는 그가 선배에게서 배운 비행기술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온전히 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분의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후배가 이후에도 그를 두려워하고 거리를 두었지만 나는 사실 이날 이후로 이분을 존경하고 따랐다. 편대 방으로 무턱대고 들이닥쳐 벌인 일이었지만 그렇게 쉽게 이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주리라 기대하지 못했기에 그날 JAY가 받은 감동과 존경의 깊이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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