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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발살바

"잠시 후 우리 항공기는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있은지 십여 분 후 대한항공 747-400 Jumbo가 막 강하를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때까지 나의 옆에서 잘 놀고 있던 딸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그 작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눈물까지 뚝뚝 떨구며 자지러지듯 울어댄다.
"아빠~ 귀가 아파요."

“당신 조종사잖아~ 어떻게 좀 해봐!” 당황한 아내가 아이와 같이 울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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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로마로 떠난 가족여행 중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저의 딸 수진이가 이때 5살이었습니다.
강하를 시작한 이후 갑작스럽게 시작된 아이의 울음에 당황하다가, 곧 저는 발살바(Equalizing)를 아이가 해낼 수만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발살바를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코를 두 손가락으로 쥐어 막은 상태에서 코를 천천히 풀듯이 콧속 압력을 서서히 높이면 막힌 유스타키오관이 뚫리면서 그 순간 귀속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귀 쪽으로 밀려들어갑니다.
곧이어 내이 쪽으로 팽팽하게 밀려들어갔던 고막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공군 조종사는 ’ 발살바(VALSALVA; EQUALIZING)’ 테크닉을 비행훈련 입과 전에 배웁니다.


하지만 성인도 아닌 아이가 혼자서 이 테크닉을 해내기엔 아직 무리입니다.


그 순간 “그러면 내가 대신 발살바를 해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먼저 아빠가 하려는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빠가 지금 너의 코와 입에 입김을 불어넣어서 아픈 걸 낫게 해 줄 거야.”


그날 제가 딸아이에게 대신 해준 발살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아이를 무릎 위에 얼굴을 마주 보고 앉힙니다. 이어서 아이의 코와 입 전체를 아빠가 입을 크게 벌려 덮듯이 밀착합니다. 아직 아이의 얼굴이 작아서 가능합니다. 이후에 서서히 아이의 반응을 보며 바람을 조심스럽게 조금씩 불어넣어 주면서 중간중간 반응을 살핍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냐고요?


효과는 탁월했습니다.


특히 아이와 몸을 밀착하고 그 반응을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을 어느 정도 세기로 얼마나 불어넣어야 하는지를 한 몸처럼 바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살 몇 번 불어넣은 입김에도 아이가 “아빠 이제 안 아파~”라고 울음을 바로 그치고 신기하다며 활짝 웃더군요.


참고로 민항기는 순항 중에 통상 해발 2000미터 산 정상과 동일한 기내 압력을 유지합니다.
일반적으로 상승 중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오직 강하중 즉 기내의 공기 밀도가 점점 높아질 때에만 발생합니다.


사실 전투기가 아닌 민항기 정도의 기압변화는 불편하긴 해도 귀에 큰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닙니다.
대부분 침을 삼키거나 껌을 씹고 하품을 하며 아이의 경우 큰소리로 울면 막혔던 관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통증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귀속의 유스타키오관이 감기나 염증으로 심하게 막혀 통증과 함께 일시적으로 청력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 주지 않으면 항공성 중이염 등으로 악화될 수 있습니다.


항공기가 강하할 때면 종종 그간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이 경우는 거의 확실히 귀에 문제가 생긴 경우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시는 분들은 알아두시면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입으로 아이의 코와 입을 덮고 천천히 바람을 불어넣어 보세요.
마치 아이와 한 몸처럼 자녀의 귀가 Equalizing 되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상 CAPT. JAY의 ‘아빠 발살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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