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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공군의 비행점검 조종사들

검은 조종복을 입던 사람들 -공군 CITATION 비행 점검 요원들

CAPT. JAY에게는 아주 특별한 동기생이 있습니다. 초중고등 비행훈련을 모두 같은 비행대대에서 받았고 자대 배치도 같은 대대로 동행했으니 절친이 될 법도 한데 사실 우리 둘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 친구는 외향적인 성격에 비행의 감을 타고난 비행 차반의 ACE 중 하나였고 JAY는 간신히 비행훈련을 마친 평범한 조종사였습니다.

중등 T37훈련 초반에 그가 불과 몇 소티만에 SOLO를 나갈 때 저는 여전히 구토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조종사로서 저는 늘 이 친구의 그늘에 가려 혼자서 열등감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자대 배치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엔 JAY가 비행단의 이른바 잘 나가는 동기생이 되었을 때, 운명의 장난처럼 그는 조종사로서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가 어렵게 비행을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서로를 싫어했다기보다는 마치 운명이 둘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위치를 바꿔가며, 항상 한 명이 인생의 화려한 정점에 섰을 때 다른 한 명은 가장 낮은 바닥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운명은 결코 서로가 가까워질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동기생에게 조종사로서 시련이 시작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 기량의 조종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90년대 건설교통부의 비행 점검 항공기 교체 사업이 진행되어 기존에 사용하던 CITATION이 공군에 무상 공여되었습니다. 부기장 중 가장 기량이 뛰어났던 그는 모두의 부러움 속에 초기 인수요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공군에 도입되는 첫 비즈니스 제트기였기 때문에 CITATION은 많은 조종사가 선망하던 기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끝을 알 수 없는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그 당시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CITATION 점검기의 가장 큰 문제는 에어컨이었습니다. 손쉽게 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수요원들의 초기 판단과는 달리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엄청난 수리비용으로 인해 공군은 결국 수리를 포기합니다. 이후 에어컨이 없는 상태에서 ‘제한적으로 운영’이라는 애매한 단서를 단채 비행단에 넘겨졌습니다.


조종사만 버텨준다면 200억 원짜리 CN235 수송기 한대를 대신해 비행점검을 전담할 수 있으니 지휘관 입장에서는 버리기 아까운 기체였을 겁니다.


아이스 박스를 싣고 임무에 나서는 비행점검 요원들


놀랍게도 에어컨이 없는 CITATION의 비행 중 기내 온도는 사우나 수준인 섭씨 50도 이상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아침에 임무에 나서는 이 항공기에는 두 개의 아이스 박스가 실렸습니다. 그 안에서 조종사와 점검 요원들의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한 얼린 물수건이 채워졌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어느 날 저녁 무렵 대대 현관 유리문을 열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던 동기생 강대위를 비롯한 임무요원들의 모습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들이 입고 들어온 조종복은 ‘무서운 검은색’이었습니다. 온몸은 처참하게 젖어있고 조종복은 벗어서 짜면 물이 주르르 바닥에 쏟아질 정도로 땀과 물수건의 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바닥엔 흘러내린 물자국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존중받지 못하던 공군의 FLIGHT CHECK(비행점검 )


열악한 환경은 비단 항공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점검기가 임무를 나간 피검 부대에서 종종 터무니없는 일들을 벌어졌습니다. 점검기가 운영이 가능한 좋은 날씨는 비행단으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훈련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전투기 훈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무리하게 SLOT을 끼워 넣다 보니 FLIGHT CHECK이 계획된 비행점검 시간마저 침범하기 일쑤였습니다. 심한 경우 이미 공항 상공에 도착한 점검기를 몇 시간씩 공중대기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50도를 넘기는 항공기 기내 온도에서 공중대기를 지시받는 조종사의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급기야 하루는 00 비행단 점검 임무를 나갔던 점검기가 또다시 2시간이 넘는 예정에 없던 공중대기를 계속하다 조종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수를 돌려 RTB(RETURN TO BASE)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점검을 위해 돌아와 줄 것을 수차례 요구받았지만 조종사는 끝내 이를 무시하고 김해기지로 복귀해 버렸습니다. 이들의 결정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었을까요?


Flight Check은 가장 중요한 비행임무 중 하나임에도 전투가 아닌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가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누구도 대신해주려 나서지 않던 그 힘든 자리를 오랜 시간 묵묵히 지켜준 동기생 강민규 대위와 그 시절 대한민국 공군 소속 CITATION 비행점검 요원들에게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는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그의 두 딸들과 아들에게 더불어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대들의 아빠는 젊은 날 그 어떤 공군의 조종사보다도 훌륭한 공군의 빨간 머플러였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강민규 대위는 전역 후 현재 AIR BUSAN에서 A320기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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