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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지휘관의 고뇌

"지휘관은 자신의 외로움을 부하들을 불러 달래려 하면 안 된다!"

군생활을 할 때 들었던 이 말이 요즈음 들어서 다시금 떠오른다.
비행대대 대대장들은 대부분 그 가족들이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다른 대도시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 그 혼자서 관사에 남아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분들이 주중에는 일과를 진행하느라 바빠 문제가 없지만 주말이 되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토요일 일요일 보직장교들을 불러내 영내에서 골프를 치고 하루 종일 같이 보내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대대원들 역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주말에는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도록 허락해 주어야 하는데 자신이 외롭다고 부하들에게 골프를 강요하면 이들은 그나마 허락된 휴일마저도 가족과 같이 보낼 수 없게 된다.  

지휘관으로서 항상 외로웠지만 현명했던 어느 대대장에 대한 얘기를 꺼내본다.


이분은 나중에 중장 즉 3성 장군까지 가셨던 JAY가 모셨던 대대장이셨다.
그 당시 JAY는 대대의 스케줄 장교였고 작전계장은 전 00 대위였다.


나는 이분의 대대장 생활을 보면서 이후 많은 고민을 갖게 되었다. 내가 과연 이분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먼저 들어서다.


이분과 같이 진행한, 첫 번째 대대의 SR(대대 MT)에서 있었던 일이다. 통상 이경우 공군본부에서 지원되는 예산은 정말 빠듯하다. 삽 결살 파티 몇 번 하면 3박 4일 일정의 총예산이 바로 바닥나 버릴 정도였다. 결국에는 대대원들에게서 갹출을 하거나 대대장의 사비로 충당하거나,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대장 개인이 친분이 있는 지인(스폰서)이 비용의 일부를 지불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해의 SR에서 대대원들은 두 번이나 최고의 식당에 초대되어 소갈비로 회식을 하게 된다. 속으로 스폰서가 누구이길래 이런 환대를 받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우리들 사이에 들 즈음에, 베일에 가려있던 스폰서가 회식장소에 도착해 대대원들 앞에 섰다.


그분은 대대장님의 친형님이셨다.


"대대원 여러분, 저의 부족한 동생 000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하시며 거의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난 그때 알아본 것 같다. 이분이 크게 쓰이실 분이구나.
스폰서를 써서 대대원들에게 인심을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독약과 같아서 언젠가는 그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온다.


그런데 그 스폰서가 형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날 이 대대장님의 형님은 당신이 원했던 그 이상을 대대원들로부터 이미 얻어가셨다.


또 한 번은 그해 가을 공중투하 경연대회가 있었던 시기였다. 마지막까지 대대 간의 경쟁이 치열하던 그해, 그만 대대의 마지막 참가 항공기에서 DROP ZONE에서 투하한 화물이 BULLS EYE에서 아주 많이 벗어났다. 역대 최악의 성적이었다. 대대 분위기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이런 경우 상당기간 대대 생활이 힘들어진다. 마음이 꼬인 대대장이 당장 다음날부터 대대의 하루 일정을 사사껀껀 간섭하려 든다면 대대원들 전체는 한동안 고생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이런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우리 회식하자~. 그리고 잊자. 정대위! 오늘 보직장교들 덕두에서 회식하자!"


회식에선 어는 누구도 날려버린 화물이며 저고도 비행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은 채 실없이 서로 딴소리만 해대며, 중간중간 위하여만 외치며 바보들같이 취해갔다. 모두가 오늘은 취해서 모두 잊어버리고 내일 출근할 때는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대대장 옆에 앉아 있던 부조종사 한 명의 목소리가 조금 컸다. 건배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우려는 그의 액션이 대대장에겐 거슬렸다 보다.


"어이~ 0 대위!"


조용히 잔을 기울이던 대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갑자기 그를 부르자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예! 대대장님!"


원래 성격이 아주 좋았던 0 대위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였다.


"좋냐?"


그때까지 그의 앞 테이블에 놓인 소주잔만 조용히 응시하시던 그분이 이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윽한 미소까지 지으며 나지막이 다시 물었다.


"넌 지금 이게 좋냐?"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지만 분명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서늘한 침묵.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들 들어가서 자고 내일은 모두 잊고 웃으며 보자. 자~ 해산!"


대대원들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고 스케줄 장교인 JAY가 계산을 하던 사이 옆에 방금까지 서있던 대대장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으신다. 누구도 어디로 가셨는지 본 사람이 없다. 정문 헌병대에 연락해도 들어오시지 않으셨단다.


작전계장과 서로 절반을 나누어 덕두의 술집을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맥주집 맨 끝 구석 테이블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혼자서 술을 넘기시는 대대장을 발견했을 때 안도감보다는 인간적인 안쓰러움에 가슴이 저려왔다.


방해하지 않으려 한참을 떨어져서 지켜보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가고 자정이 다 되어갈 즘, 이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다가가서는


"대대장님 많이 늦었습니다. 이젠 모시겠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한번 쓰윽 보고는 시익 웃으며 부축하는 작전계장과 스케줄 장교에게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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