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이국종 교수님의 닥터헬기에 대하여

헬리콥터 운항의 어려움

최근에 한참 뜨거웠던 논쟁 '이국종 교수가 요구한 닥터헬기 24시간 기동'과 관련해 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 먼저 몇 가지 단서를 밝힙니다.

첫째, 저는 이국종 교수를 아주 많이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둘째, 저는 인간사의 갈등 중 많은 부분이 서로 간의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저는 헬기 조종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악기상에서 헬기 운영을 직접 통제해 보았던 전문가입니다.

저는 공군에서 수송기를 비행한 조종사임에도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논쟁이 되는 헬기의 기동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약 2년간 공군작전사령부 전술통제본부 소속 공수 통 제장 교직을 수행했으며 이때 공군의 헬기 운항 통제가 저의 업무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저는 이곳에서 공군 헬기를 통제하는 저의 지휘관 대령 직책, 공수 구조과장의 지휘를 받아 헬기 운항을 통제하는 통제장교였습니다. 공작사의 전술항공통제본부에서 제가 아는 한 공수 구조과장의 자리는 독특하게도 늘 그 규모에서 볼 때 월등히 큰 수송기 부대 출신이 아니라 헬기 출신 대령이 도맡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해 업무를 익힌 지 불과 며칠 만에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지를 이해했습니다.

저의 지휘관 구대령 님(CH47 시누크 조종사 출신)은 헬기 임무의 GO NO GO결정의 전권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TOP이라고 불리는 작전사령관을 보좌하는 가장 최상위 임무통제 결정기구에서 이분의 한마디는 곧 최종 결정을 의미했습니다. 오랜 기간 이분은 통제장교인 저를 통하지 않으시고 중요 헬기 임무에 관련해서는 본인이 직접 상황을 파악하시고 GO NO GO를 결정하셨습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조종사의 의견을 물어보고 공식 기상치 와 예보를 비교하셨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대위이던 저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단 한 가지 만은 저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직접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하셨습니다. 이후에 최종 결정만 제게 통보하셨습니다.

"정대위 헬기 지금 띄우면 되겠다!"
"정대위 헬기 오늘은 안 되겠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말 조차 않으시고 당신이 직접 헬기 운영부대인 6 전대에 직접 전화해 임무를 조율하고 결정을 알리는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7시 VIP의 헬기 이동이 계획돼 있던 날에는 늘 저보다도 먼저 5시 정도에 출근하셔서 이곳저곳 헬기의 이동경로의 기상을 파악하시던 이분이 그날은 무엇이 바쁘셨는지 제게 직접 기상파악을 지시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날 저는 비로소 이분이 그간 어떠한 근거로 임무 가능 여부를 판단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VIP가 헬기가 아닌 차량으로 이동하는 그 결정의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정대위, 지금 준 전화번호가 천안의 성거산 공군 사이트 서쪽 위병초소야. 전화해서 근무 중인 초병에게 그 앞의 계곡 건너편에 파란 건물이 보이는지 물어봐라"

그때 알았습니다. 왜 공군의 공수 구조과장 자리가 수송기 대령이 아닌 헬기 조종사 출신 대령이어야 하는지요. 그 자리는 대체 불가한 자리였습니다.

어느 날은 이분과 6 전대 간의 통화내용을 같이 모니터 하라는 지시를 받고 수화기를 들어 3자 통화를 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 통화는 대충 이러했습니다.

"기상이 너무 애매하다. 그냥 임무 캔슬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 VIP가 제시간에 행사에 도착하시도록 헬기가 무조건 떠야만 한다. BELOW MINIMUM인 거 안다. 어제저녁에 얘기해둔 예비 조종사 김소령 지금 대기 중이냐? (이분은 VIP를 모실 헬기 조종사가 아닌 예비 조종사) 김소령 컨디션 어떤가? 그래 좋아. 그러면 김소령 먼저 띄워서 5분 먼저 PATH FINDER로 진행시키자."

'PATH FINDER' 이 단어를 처음 들은 날 통제장교로서 사실 저는 전율할 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군 헬기 임무는 BELOW MINIMUM에서 진행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PATH FINDER 김소령은 임무 헬기가 지나갈 경로를 직접 먼저 날아보고 경로를 결정하는 '길앞잡이'입니다. 이렇게 한대의 헬기가 먼저 앞에서 안개로 가려진 골짜기 사이의 길을 찾아 길을 열면 뒤에 따르는 VIP헬기가 그를 따라 진행해 목적지에 안전하게 착륙하게 하는 공군의 전술 헬기 운영방식입니다.

이들에게 BELOW MINIMUM은 그저 책에만 적어둔 기상 제 한 치일 뿐이었습니다. 임무를 안전하게 완수하기 위해 헬기 조종사와 통제관들이 짜내어 온 방법은 그간 공식 기상보고치에만 의지해 GO NOGO를 결정하던 수송기 조종사인 저에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안 되는 임무를 되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즘에서 다시 이국종 교수의 24시간 헬기 기동에 대해 혹 어쩌면 겁쟁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침묵을 지키고 있을 대다수 헬기 조종사를 대신해 나름 이분야의 전문가로서 저의 결론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이국종 교수님이 말한 24시간 헬기 기동, 즉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헬기를 운영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충정에 인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이 결정을 헬기 조종사 개인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구대령 님과 같은 베테랑 통제관과 공군 전술통제 작전본부와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BELOW MINIMUM에서 안개 낀 골짜기 사이로 미리 나아가 목숨을 걸고 길을 뚫던 PATH FINDER 같은 일을 닥터헬기 조종사가 혼자서 하게 됩니다.

저라면 그 비행하지 않을 겁니다. 군인정신으로 단련된 제가 제 목숨 하나가 아까워서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공군과 같이 확실한 인프라와 영민한 지휘관이 통제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안개 낀 골짜기나 빌딩 숲 속에 혼자 뛰어들어 그 인계점이라는 곳을 찾아 헤매는 위험한 일을 저는 결코 하지 않을 겁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해낼 일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자살행위일 뿐입니다. 작금의 현실에서는 단언하건대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그래서 논쟁에 참여하셨던 모든 분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지휘관의 고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