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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부기장 혼돈에 빠지다


대한항공이라는 좋은 회사에 입사를 한 이후에 부기장으로 비행을 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점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막막했던 점이었습니다.

한번 한번 매 비행을 할 때마다 새로운 기장들과 비행을 하다 보면 이분들 생각과 절차가 모두 조금씩 서로 다릅니다.
작은 차이야 개인적인 것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가끔은 저의 조작과 생각에 대해 정색을 하고는 야단을 치는 일을 겪다 보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 제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때마다 물러서지 않고 공손히 물어보았습니다.  

"기장님. 죄송한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아봐야 할까요?"
"그걸 내가 왜 알려줘. 니들이 찾아야지!"
곁눈질 한번 찔금하고는 그때부터는 고개마저 돌려 버리곤 대응을 안 합니다.


처음 몇 번은 비행 후에 정말 모든 매뉴얼을 다 늘어놓고 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저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대한항공에서 보냈던 첫 1년은 이렇게 좌충우돌 답 없이 흘러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사무실 근무를 제안받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운항 품질부 간행물 AUDITOR라는 근사한 타이틀의 자리였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에 근무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침내 그곳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던 질문의 해답을 얻었습니다.


이곳은 5명의 각기종의 검열 관급 선임 한국인 기장님과 동일한 숫자의 선임 외국인 기장 총 10명이 근무를 하는 곳입니다.


이분들이 매주 특정 이슈를 두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토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논리적이고 박식하고 30년 가까이 비행한 경험이 훌륭한 지식에 버무려져 나오는 토론에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었습니다.


혹 제가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대부분 몇 분 안에 근거가 되는 규정을 가지고 다시 돌아와서는 꼼꼼히 설명을 해주시거나 혹 그 근거를 찾지 못하면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시고는 꼭 언제까지 자료를 찾아 다시 알려주마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네 가지가 이제 그분들의 나이가 되어가는 CAPT JAY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나. 근거 없는 지식은 입에 올리지도 마라. 경험에서 나온 것이면 경험이라고 말해라.


둘. 10명의 훌륭한 AUDITOR가 10가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슈가 있기 마련이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셋.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나무만 보다 숲을 놓치는 우를 범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늘 생각해라.


넷. 너를 흔드는 주변의 말에 기죽지 말아라. 늘 정답은 그들의 입이 아니라 규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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