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스트처치에서 온 편지.
주인공인 키트 알렉산더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살고 있습니다. 비행학교의 교관과 학생 사이로 만난 한국인 조종사 민정씨와 결혼해 두 딸을 둔 다정한 가장입니다. 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Virgin Australia항공의 B737 선임 교관 기장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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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세상을 바꾸기 전 누군가가 만약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살고 있던 이 남자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면 그는 주저 없이 “전 조종사입니다. ”라는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키트’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가 여러분에게 전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자신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로 바라봐요.”
그가 전에 일하던 Virgin Australia 항공사가 Lock Down '노호 라후이' (noho rahui)에 들어가면서 그는 직장을 잃었다. 이제 그는 똑같은 질문임에도 다른 대답을 해야 한다.
‘New World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피자를 배달하며 돈을 벌고 있어요.’라고 말이다.
“ '나는 그 이상이다'라고 말하렵니다. 나는 아빠이고 남편이며 아들이고 누구의 형제다. 그리고 나를 만드는 이 다양한 '다른 일' 들을 사랑한다라고요.”
두 딸의 아빠인 키트는 지난 24년간 조종사로 일했다. 크라이스트처치를 홈베이스로 두고 타즈만 루트와 태평양의 섬들을 연결하는 비행을 주로 했다. 뉴질랜드가 락다운에 들어간 지, 단 이틀 만에 Virgin Australia 항공은 뉴질랜드를 오가는 모든 비행 편을 중단했다. 그의 직장이 사라진 것이다.
“우선 무서웠어요. 슬프기도 하고요. 전 평생 이 일을 하다 은퇴할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우린 늘 근사한 곳으로 비행을 하고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어요. 사람들이 모두 그래요. 지금 가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바로 사랑하는 동료들을 잃은 것이라고요.”
키트는 이 상황을 그와 동료들 모두 마치 영문도 모른 채 폭격을 당한 뒤 남겨진 기분 같았다고 말한다.
“봉쇄가 내려진 상태에서 동료들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서로 만나 얘기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어서 생활비와 집 대출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에게 바로 다가왔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두려웠어요.”
그는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집에 머물러 있었다.
“일주일 즘 지난 뒤에 더 이상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날부터 그는 스케줄을 만들어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다시 ‘앞으로 전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냥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인데, 전 그럴 순 없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오랜 친구 한 명이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그의 소개로 온라인 코칭 프로그램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키트는 막혀있던 자신의 능력을 마침내 다시 자각하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단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그는 적어도 50여 곳에 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누구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아마도 한 20여 곳에서 떨어졌다는 이메일을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곳에서는 이메일 답장조차 없더군요. 그러다 어느 슈퍼마켓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제가 그곳에 일곱 번이나 다른 포지션에 지원을 했거든요. 아마 더 이상 지원하지 말라고 매정한 소리를 하려 전화했던 것 같아요.”
전화통화를 하다가 그 슈퍼마켓의 주인이 사실은 키트가 아는 사람이란 것 깨닫게 된다. 그가 예전에 비행을 가르쳤던 한 학생의 형이 그 슈퍼의 주인이었다.
그와 약 20분간의 전화통화를 마치고 키트는 주당 25시간을 출근해 식료품 담당의 보조로 진열대에 물건을 채우는 일을 마침내 얻게 된다.
“처음에 전 이 정도 일은 구하기 쉬울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고 있답니다. 몇몇 친구들은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
그의 사정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피자를 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키트는 지금 트럭 운전면허를 따려 구상 중이고 한편으로 다시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이어서 해볼 생각도 하고 있다.
“지금 버는 돈으로 이제 다시 생활이 가능해졌어요. 우린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요. 결코 뒤로 밀려나고 있지 않아요.”
키트가 이번 일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직장을 잃은 현실이 슬픕니다. 하지만 저의 직업이 저를 의미하지는 않아요. 직업이 저의 존재를 규정할 수는 없어요.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다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굳이 가질 필요가 없어요.”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에 지금 당장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스스로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스스로 이룬 작은 성공에도 크게 칭찬해 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주 작은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내어 디뎌 보세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없어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도 좋아요.”
키트가 앞으로 내디딘 작은 발걸음은 '피자 배달일'이었다. 잠시 부정적인 망상을 일삼는 생각의 스위치를 꺼둘 기회를 얻은 것이다.
피자배달을 하며 그는 비로소 집을 빠져나와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일이 가능해졌다.
“지금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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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와 캐빈 승무원을 포함한 항공사 직원들과 그 가족의 아픔을 더불어 나누고자 이 글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공개해주신 KIT ALEXANDER 씨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