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에 한 번 꼴로 다니던 대전 옥천 간 시내버스는 학생들의 등교시간이 되면 6시 반 첫차를 제외하고는 점점 만원이 돼가다가 아침 7시를 넘기면 종종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이 만차가 되었다. 우리 동네는 어쩌다 한두 명 손을 흔드는 손님 말고는 간이 정류장처럼 정류장 싸인만 보일 듯 말 듯 서있는 그런 곳이었다. 거기에다 근처 큰 마을을 지나쳐 대전으로 향하는 구불구불 나 있던 국도에서 오래간만에 쭉 뻗은 직선구간 중간에 갑자기 세워 둔 곳이라 시원하게 한번 속도를 올린 버스기사들은 단 한 사람 때문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종종 그들은 못 본 척, 더러는 손을 좌우로 흔들며 더는 태울 공간이 없다는 신호를 하고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대전방향으로 내달렸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한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버스는 연착되기 일수였고 어느 날은 옥천 장에 다녀오마 하시던 어머니가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버스가 끊긴 것 같다며 머리와 어깨에 수북이 쌓인 눈을 털며 들어오시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린 나는 마당에 나가, 담장 너머로 족히 1킬로미터는 넘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국도를 혹 어느 용감한 버스기사가 마침내 고개를 넘어와 엉금엉금 게으름이라도 부리며 지나가지는 않는지 살피곤 했다.
40년 전 시골버스의 승무원들은 승객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 채 몇 발자국 안으로 향하기도 전에 거칠게 출발시켜 하마터면 넘어질 듯 휘청이게 되는 것이 예사였고 대전을 벗어나 시외구간으로 들어가며 추가로 내야 하는 버스비를 두고 어린 차장은 손님들과 매번 실랑이를 벌였다.
"50원 더 내!"
하루는 눈도 안 마주치고 허리춤에는 앞으로 둘러 맨 전대를 불쑥 내민 안내양이 퉁명스럽게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몇 년을 다녔는데 왜 누나만 더 돈을 내래요?"
어린 나는 어깃장을 부리는 차장이 요구하는 몇십 원을 순순히 내어줄 맘이 없었다.
어느날은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기사마저 고함을 지르는 통에 던지듯 그 몇십 원을 차장 손에 야멸차게 욱여넣어주고는 씩씩거리며 버스에서 뛰어내리고는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분해하기도 하였다.
탁 트인 직선구간의 중간에 있던 우리 동네 정류소를 미리미리 '다음에 내려요!' 라고 몇 번을 차장에게 다짐을 받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조금 방심이라도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버스는 정류장을 한참 지나친 뒤에야 멈추서곤 했다. 어린 학생을 그 밤에 가로등도 없는 국도변에 내려주고도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의례히 제대로 미리 알리지 않았다며 타박만 하곤, 나로서는 시시비비를 따질 짬도 없이 마치 못생긴 봇짐 하나를 차 밖으로 내 던지듯 하고도 부족해, 디젤엔진의 시커먼 매연을 일부로 뒤집어쓰게 하려는 듯 험한 얼굴을 한 기사의 그 못된 심사가 보이도록 거칠게 다시 내달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집으로 가는 길엔 또 하나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도와 마을 사이에는 작은 개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 이곳엔 다리가 놓여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마을 어른들이 나와 돌다리를 살펴주어야 했다. 물이 마르는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크고 작은 돌덩이들을 가져다 만들어 놓은 돌다리가 제 몫을 하였지만 봄의 끝자락 초 여름으로 접어들면 비가 잦아진 뒤로는 수시로 그 큰 돌덩어리들도 물에 잠기곤 했다. 며칠을 기다려 수위가 낮아진 이후에는 그마저도 온데간데없이 쓸려 내려가 동네 어른들이 다시 돌다리를 놓는 수고로운 일을 반복했다.
간밤에 비내리는 소리라도 들리면 적어도 평상시보다 15분은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혹시나 하며 다가가 개울 물을 살펴보던 아이들이 일부는 뚝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일부는 왼쪽으로 다리가 놓여있던 옆 마을 쪽으로 잰걸음을 옮겨야 버스를 타고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릴 승강장을 결정하는 일은 늘 머리를 굴려야 하는 난해한 일이었다. 물이 그 사이 빠져 다시 어른들이 돌다리를 만들어 두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거센 물살에 오늘은 아직 아무도 개울물속에 들어가 돌다리를 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잘못 판단하고 마을앞에서 내리면 또다시 15분을 걸어 내려가 큰 마을의 다리를 건너 돌아 돌아 집에 가야 하는 일이라 차라리 처음부터 큰 마을 정류장에 내려 걷기 시작하는 편이 나을 수 있었다.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덧 우리 동네 근처에 들어서면서 그제서야 '떡'하고 새로 만들어진 돌다리를 발견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애꿎은 잔 돌멩이들을 힘껏 개울 쪽으로 걷어차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