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비행

by 캡틴 제이


저의 책 '어쩌다 파일럿'에도 담았던 사연이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날을 회상해 봅니다


공군에서 CN235 선임 부조종사이던 시절 지금은 장군이 되신 그 당시 임무 기장 김 00 소령님과 함께 남북 고위급 회담을 위해 서울에 대기하고 있던 남북 대표들을 성남공항에서 모시고 제주로 향하던 비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북한 노동당 서열 2위였던 김용순 비서는 키가 190 cm가까이 되던 기골이 장대한 거인이었습니다. 반면 우리 측 대표이셨던 임동원 대통령 특보는 외교관 출신의 단아한 선비 인상의 단신이셨기 때문에 두 분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언뜻 보기엔 김비서가 남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분의 독특한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수송기를 모는 공군 조종사들도 PA 기장방송을 가끔 합니다.


이날도 이 특별한 VIP 승객들을 위해 부조종사인 저는 여러 가지 PA를 준비해 두었고 태풍이 올라오는 어려운 날씨임에도 다행히 고도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창밖으로 남쪽 산하의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간중간 PA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기 위해 객실의 LOAD MASTER와 인터폰을 통해 두 분 VIP 간에 대화가 잠시 중단된 틈을 타서 준비했던 PA를 하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화가 잠시 중단된 순간에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좌측 아래로 보이는 큰 섬이 진돗개로 유명한 섬 진도입니다. 진돗개는 그 종의 보존을 위해 섬안에서...."


이 방송을 마치고는 다시 로드마스터에게


"어때요? 방송은 잘 나왔나요?"


"정대위 님 뒤에 지금 난리 났어요. 북한 군인들 지금 모두 창밖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태풍의 상륙이 임박한, 순간 풍속이 50 나트를 넘나들던 제주도에 플랩을 절반도 내리지 않은 비정상 플랩 상태로 임무 기장 김소령 님이 '깻잎 한 장' 최고의 랜딩을 보여주었던 그날을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합니다.


특히 임무 조종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 한참을 빗속에서 기다리다 결국 저와 눈이 마주치자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전했던 김용순 비서의 메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젊의 대위의 거수경례를 끝으로 이 어렵고 껄끄러운 남북 고위급 회담 지원 임무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날 제주는 모든 민항기의 운항이 태풍으로 결항된 상태였으며, 한반도 상공에 떠 있던 항공기는 제주로 향하던 공군의 CN235 한대가 유일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을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