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차 좀 세우고 사람들한테 물어보지 그래?”
참다 못한 아내가 길을 잃고 해매는 남편에게 한 마디 한다.
내비게이션이 잘 되어 있는 요즘은 덜 하겠지만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도 남자들은 대부분 길을 물어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우리나라 사람만 그런가 했더니 해외생활을 오래 해보니 외국 남편들도 똑같다.
그럼 하늘을 나는 조종사들도 길을 잃기도 할까?
사실 하늘에 놓인 길, 항로라는 것은 길을 잃고 말고 할 것이 없는 것이 이제는 비행 컴퓨터에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항로 이름과 특정 웨이포인트를 입력하면 되는 단순? 한 것이다. 자동차 네비처럼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 모든 게 그렇게 쉬울까? 그렇지 않은 이유는 조금 후에 설명을 하기로 하고,
하늘을 나는 철새들은 지구의 자기장을 느끼고 매 해 같은 길을 찾는다고 하는데 사람은 어떨까? 실제 사람 중에도 지구 자기장을 느끼는 사람 즉, 느낌만으로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신기하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나의 동생은 태어나면서 이런 나침반 감을 타고난 경우다.
그럼 이런 이들이 조종사가 된다면 유리한 구석이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조종하며 몸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비행하는 일은 매우 특별한 비행기 즉 산불을 끄는 소방 항공기나 전투기가 아니라면 오히려 위험한 비행방식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몸에 감각은 불완전하며 종종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말 “계기를 믿어라!” 가 조종사에겐 생명을 살리는 격언으로 남은 것이다.
이를 ‘공간 지각력(Spatial Orientation)’이라고 부르며 조종사가 되기 위한 적성 검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과목이다. 즉 새처럼 자기장을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현재 자기의 위치와 이동방향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머릿속에 그려내는 능력이다.
실제 민항조종사가 가장 흔하게 자신의 공간지각력을 테스트하게 되는 일은 공중이 아니라 지상에서 이동하는 ‘텍싱 (Taxing)이다.
굳이 비가 내리는 야간이 아니더라도 오늘 내가 와 있는 도쿄 나리타공항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미국의 시카고 공항과 같이 복잡한 활주로와 텍시 웨이를 가지고 있는 대형 공항에서 종종 대낮에도 조종사들이 길을 잃는 경우가 벌어진다.
“에이 설마~”
똑똑한 조종사들이 공항 안에서 길을 잃는 일이 있을까 싶겠지만 오죽하면 관제용어에 공식적으로
“Request Progressive Taxi Instruction, 나 지금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으니 소몰이하듯 좌회전, 우회전 그때그때 알려줘!”라는 말이 있을까.
15년 전 즈음 부기장으로 이곳 나리타 공항의 동편 활주로 34R에 착륙하고는 공항의 정반대 서편 터미널에 주기(Parking) 하느라 착륙 후에 택시 시간만 20-30분이 걸렸던 날이 있었다.
게다가 아직도 땅 팔기를 거부한 고집 센 농부 때문에 중간엔 기형적으로 택시 웨이가 굽어져 있는 곳이다.
그날 나리타 공항은 혼잡한 것에 더해 야간에 비까지 내려 택시 웨이 싸인이 잘 보이지도 않았으니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밤에 관제사로부터 받은 택시 지시를 나이 드신 노 기장님께 설명을 하려들자, 이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인웅아, 이제 난 모르겠다. 네가 가라는 데로 갈게!”
자존심 굽히고 차를 잠시 세운 뒤 길을 물어보는 일이 남자들에겐 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