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즈음 비행을 마치고는 집에 돌아와 쉬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회사 번호였다.
라인 조종사에게 비행 직후에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만큼 섬뜩한 일이 또 있을까? 전화기를 손에 집어 드는 그 짧은 순간 이미 머릿속에는 '비행 중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가득했다.
"여보세요!"
아랍 영어의 엑센트였다.
"기장님! ID와 돈이 든 지갑을 차에 두고 내리셨어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내일 Crew Tansport Desk로 찾으러 오세요!"
통화하는 도중 속으로 '무슨 소리야, 지갑이라니!' 하며 플라잉 백의 앞 포켓 지퍼를 열어보니 '없다!' 텅 비어 있었다.
몇 시간 전 비행을 마치고 회사로 이동하던 버스가 코너를 급히 돌다 한순간 가방이 출입문 아래 발판까지 굴러 떨어졌던 장면이 순간 눈앞을 스쳤다.
중요한 ID를 잃어버린 상황이라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바로 회사로 차를 몰았다.
지갑을 건네주던 '모하메드'라는 이름의 직원이 문득 이런 말을 건넨다.
"기장님. 운이 좋으셨어요. 돈도 들어 있어서 지갑을 돌려주지 않았으면 새로 ID 발급받느라 낭패를 겪으실 뻔했어요."
그의 말이 옳다. 그에게 전화를 받기 전까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비록 회사 소속의 크루 버스 안에 지갑을 떨어뜨린 것이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법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한국도 아니고.
항공기와 회사를 연결하는 크루 버스 또는 외국 공항에서 출발해 호텔에 도착하는 크루 버스에서 내려 가방을 건네받은 뒤에 늘 빠뜨리지 않는 일이 있다.
운전기사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한다. 어떤 날은 등을 돌린 기사에게 두어 번 "땡큐"를 큰 소리로 내어질러야 돌아보기도 하지만 이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는 마땅히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날도 나는 마지막까지 일부러 남아 트롤리의 커버를 내리느라 등을 돌리고 있던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었던 기억이 났다.
그나저나 어쩌면 좋을까.
며칠 전 묵었던 휴스턴 호텔에 내가 두고 간 물건이 있다고 또 연락이 왔다.
비행할 땐 세상 꼼꼼한 척하면서도 평상시에는 덤벙거리는 것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