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들 야간비행 이야기를 더 하면 엄살 부린다고 타박하실 것 같아서 최근에 만난 어느 응급실 의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며칠 전 새벽에 아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새벽 5시에 응급실 당직의를 만나 검사를 진행하고 그에게서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두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남아서 결과를 듣고 약을 받아 가시겠어요? 아니면 댁에 가셨다가 제가 전화를 드리면 다시 나오시겠어요?"
어찌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혹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상태가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어 아내에게 눈치를 하고는
"그냥 남아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이외에 특별히 다른 말은 없었다.
그의 진료실에서 나와 우리는 곧 반대편 처치실 간이침대에서 혈액과 소변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조금 전 그 당직의가 잠시 한가한 틈을 타 마실 나오듯 우리를 찾아왔다.
"제가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드리는 조언인데 검사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리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이유는 따로 설명을 안 드려도 잘 아실 겁니다. 결과가 나오면 제가 전화를 드릴게요."
하루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오르내리는 와중에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오랜 시간 기다린다는 것이 그의 상식에는 위험해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두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심지어 그날 오후까지 이 인도인 당직의 와는 어쩐 이유에서인지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 번째 전화통화 시도마저 실패하자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응급실의 상황이 머리에 그려졌다.
결국은 그날 오후 2시 즈음 나 혼자서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그 날은 금요일로 한국의 일요일과 같이 휴일이었다.
응급실을 들어서자 한쪽 대기실 구석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려 마침 나와 있던 그와 눈이 바로 마주쳤다. 리셉션 쪽으로 다가가려던 나를 보고는 그가 먼저 손짓을 하더니 미안한지 바로 사무실로 안내를 한다.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일반인인 나 조차도 효과를 의심하는 파란 치과용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하고 있던 것으로도 모자라 그 위로 드러난 잠이 부족한 그의 퀭한 두 눈은 보는 나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눈가는 축축하게 눈물마저 맺혀있다. 그가 분명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아, 정말 미안해요. 새벽에 검사를 하고 떠나신 이후부터 갑자기 환자가 한순간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죄송합니다. "
"아니 어젯밤을 새운 것 같은데 다음날 오후까지 응급실에 남아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는 내가 묻는 말에는 결국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마스크로 가린 입과 코 위로 드러난 그의 눈가에 씁쓸한 미소가 잠시 스치는 것이 보였다.
"검사 결과는 좋아요. 아무 균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혹시 더 검사를 원하면 내일 외래를 예약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서는 자리를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Hang in there! Doctor!" 힘내세요. 선생님.
30대 후반으로 보이던 그가 내민 손을 잡아보고는 그가 더욱 안쓰러워졌다.
배가 나와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그의 손은 어린아이처럼 작고 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