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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15. 2021

조종사의 수다




언젠가 대학 과제물인지 논문인지를 준비하는 한 학생으로부터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에어라인 조종사로서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어서 잠시 생각이 필요했지만 잠시 후에 나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조종사'라고 대답을 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별반 다르게 대답할 것 같지는 않다. 


프로페셔널 파일럿이라면 특히 충분히 경력이 쌓여 기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라면 이미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무수한 검증의 과정을 지나쳤을 것이다. 기본 비행훈련 2년에 쌍발 터보 프랍이나 CRJ를 타고 다시 737 같은 쌍발 제트기를 거친 뒤 대형기에 마침내 도달했을 것이니 그간의 입사시험과 매년 두 번 치르는 정기평가와 신체검사만도 수십 번이다. 


지식과 Discipline(규율, 자기 관리), 건강이 동시에 완벽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올라올 수 없는 단계인 민항기 조종사들에게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건강'이 아닐까?


에어라인에서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종류의 심리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어제 끝난 정기 심 훈련에서는 동료 조종사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이는 이상 조작에 대응하는 훈련을 받았다. 단순히" I have Control"이라고 외치고 휠을 뺏어 조작하면 그만이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상황을 겪어보니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실제 비상이 벌어진 항공기에서는 어느 한 조종사가 페닉 상태에 빠져 동료 조종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종종 보고된다.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 프랑스 330 항공기의 추락원인도 패닉 상태의 부기장이 무의적으로 마지막까지 스틱을 당겨 스톨 회복을 방해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항공기가 가장 위험한 상황에 들어가는 상황은 집중력이 필요한 비행단계(비상이나 이륙 직후나 최종 접근 단계)에서 다른 조종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오조작을 하는 경우다.  


착륙을 위해 접근하는 항공기에서 플랩을 내려달라는 요구에 반대로 올려버리거나 이륙 직후 기어를 올려달라는 요구에 기어가 아닌 플랩을 올려버리기도 한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실제 항공 역사에 이러한 오조작에 의한 비행사고는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그럼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결국은 동료 조종사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사고를 막을 가장 중요한 대응책이 아닐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비행을 위해 출근해 브리핑실에서 플라이트 플랜을 서로 점검하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실없는 이야기로 서로를 살피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늘 이야기하지만 '말수가 적은 조종사'는 CRM이 어려운 조종사라고 볼 수 있다.  비행안전을 위해서라도 조종사는 실없는 수다를 떨 줄 알아야 한다. 동료에게 나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툴로 '수다' 만한 것이 없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우리 조금 자신을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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