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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Jun 07. 2021

몰라! 괜찮아!



호텔 현관 앞 이제 곧 공항으로 출발할 호텔에서 제공한 대형버스 안에는 이미 대부분의 크루들이 탑승해 있었다. 


체크아웃이 조금 늦어지는 부기장을  기다리는 동안 기장은 맨 앞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을 한번 주욱 바라보고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모두 잘 쉬셨나요? 오늘 비행시간은 8시간 52분이고요. 날씨는 좋습니다. 택시 시간은 미디엄 정도 예상하시면 되고요. 히말라야 상공을 지나는 비행이니까 터뷸런스가 있을 겁니다. 스스로를 잘 보호하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저는 편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비행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여기 있어요. "


이렇게 간단히 브리핑을 마칠 즈음 부기장 이브라힘이 버스로 올라왔는데 그의 얼굴이 이상하다. 좌석에 앉은 뒤 잠시 아랍어로 그 뒤쪽의 부사무장에게 뭔가를 심각하게 얘기한다. 서로 몇 마디가 오고 가더니 해결이 되었는지 잠잠해졌다. 


"무슨 일 있어?" 아랍어를 알아듣지 못한 기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 예, 체크아웃하는데 사복 차림의 백인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서있더라고요. 전 그들이 줄을 서 있는 줄을 모르고 그냥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데(거리 두기로 공간이 벌어지다 보니 대기하는 줄이 애매해진 면이 있었다.) 그때 사복을 입고 있던 이 여성들이 제게 뭐라 하는데 전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다가  마침 우리 부사무장이   앞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길래 혹시 저 사람들이 뭐라 하는데 무슨 이야긴지 아는지 물어보았죠. 그랬더니 저에게 그냥 무시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시하고 나가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그들이 제게 다가와 화를 내며 왜 새치기를 하냐고 따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크루 전용 라인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했다고 급히 사과를 했어요. 황당한 일을 당했네요. "


"오해 구만, 잊어버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저 오해야."


그런데, 왜 부사무장은 그들을 무시하라고 한 거지? 이해가 안 되는데? "


"예. 저도 왜 그녀가 그런 말을 해서 오해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조금 전에 다시 물어본 거였어요."


"잊어버려. 별일도 아니구먼.." 기장은 그를 진정시키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 말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잠시 뒤 버스가 인천공항 터미널에 도착해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게이트 46번에 도착해 보니 출발 1시간 30분 전이다. 


오그멘트 캡틴(8시간 이상 10시간 이하의 비행에서 추가되는 항로기장)  '카이'가 외부 점검을 나간 사이  둘은 일찌감치 칵핏 셋업을 마쳤다.  잠시 뒤 승객보딩이 시작될때까지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려도 좋을 그 시간에  부기장 이브라힘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져 있다. 


"아직도 그 여자들 생각하는구나? 잊으라니까, 그냥 서로 오해한 거야." 기장이 물었다. 


"기장님도 아시죠? 다른 나라 호텔에 가면 크루 체크아웃 라인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사복을 입은 그 여자들이 몰려 있는 걸 보았지만 그냥 지나쳐 우리 부사무장 바로 뒤에 가서 선거였거든요. "


"그래 이해해. 게다가, 거리두기로 인해 대기하는 사람들 사이가 멀어지다 보니 애매하게 보이지. 그리고 나도 그들 4명인가 여성들을 보았는데 우르르 몰려 있어서 언뜻 보기엔 대기 줄에 서 있는 것이 아닌 듯 보일 수 있는 상황이야. 그냥 오해니까 잊어버려."


"그러고 싶은데 그냥 화가 나네요. 부사무장은 왜 무시하라고 얘기를 해가지고는...."


"자네 어제 나와 비행 중에 한 얘기 기억나지. 우리 한번 그대로 적용을 해 볼까?"


이 말에 그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네!"


"자네를 지금 힘들게 하는 것은 자네의 에고라는 걸 이해하지?"


"예!"


"내가 에고에는 늘 이원성(두 가지 면)이 있다고 했던 얘기도 기억하지?"


"예!"


"그럼 오늘 자네의 에고가 이 경우에 어떻게 이원성을 가진 것인지 살펴보자고."


그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에고의 한 면은 지금 내가 왜 그런 멍청한 실수를 했을까 자네를 질책하고 있어. 맞지?"


"네. 맞아요."


"그리고 다른 에고는 바로 그 비난에 반응해서 즉시 자네를 보호하려고 그건 자네의 잘못이 아니라, 줄을 애매하게 섰던 그 여자들 무리와 그리고 자네의 질문에 그냥 무시하라고 잘못 조언했던 부사무장의 잘못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지?"


"네. 맞아요."


"만약 자네 에고에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원성(나는 영어로 Two side라고 표현했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화가 나 있을까? 아니지? 완벽히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쿨하게 다음엔 더 조심하자 라고 생각하고 잊을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 부사무장과 여자들 무리에게 잘못이 있다고만 생각한다면 역시 그들이 오해하고 잘못 행동한 것이니 자네는 전혀 자책하고 있지 않을 거야. 그 어느 경우도 한쪽 생각만 일어난다면 자넨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거야? 어때 내 말이 맞지?"


"네. 맞아요. 기장님~~"


대답을 하는 이브라힘의 얼굴에 마침내 궁극의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가 마침내 에고가 만드는 공허한 갈등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땐 내가 뭐를 하라고 했지?" 기장이 확인하려는 듯 다시 물었다. 


"I don't Know! but It's all right! 하라고 하셨죠."


"그래, 몰라! 괜찮아! 이브라힘, 아직도 화가 나있나?


"아니요. 기장님. " 


그는 마침내 평정심으로 돌아왔고 비행 내내 다시는 두고 온 그 백인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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