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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Jul 30. 2021

힘든 비행을 덜 힘들게


300명 이상을 태울 777에 달랑 마흔다섯 명의 승객을 태우고는 그것도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는 인도 뱅갈로 행 비행편의 브리핑실에는 그 흔한 크루들의 웃음소리도 없었다. 




임무 기장으로 먼저 내 소개를 한 후에 지금 옆에 서 있는 다른 세명의 조종사에게 각자 소개를 부탁했다. 




마지못해 이름과 출신 국가만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우리를 바라보는 캐빈크루들의 얼굴만큼이나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 괜히 시켰다. ㅠㅠ




"소개하는 제 동료들의 얼굴에 미소가 하나도 없네요."




이 말을 하자 그제야 작지만 키득키득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오늘 힘든 비행이죠?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저 군출신입니다. 오래 있었어요. 10년. 공군 예비역 소령이에요. 네 알아요. 제 얼굴이 딱딱하고 고리타분해 보인다는 거... "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이 타이밍에 분위기를 한번 살펴야 하는 것을 이젠 안다. 먼저 웃으면 안 된다. 


크루들의 머릿속에 잠시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우리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지?' 하는 짧은 프로세싱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상대로 갑자기 모두들 ‘빵’ 하고 폭소가 터졌다.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생긴 건 이래도 저 정말 쉬운 사람입니다. 오늘 비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러분의 안전, 그리고 웰빙입니다. 언제든 편하게 제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저에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이렇게 정리를 하려다 동료 기장들 쪽을 바라보고 ‘혹시 뭐 더 전달하고 싶은 거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다른 한 명의 기장이 그제야 비행시간을 전달한다. 




이런 내가 가장 중요한 걸 전달하지 않고 딴 얘기만 하다가 브리핑을 끝낼 뻔한 것이다. 




"이런 이런, 이것 보세요. 지금 저도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니까요. 참 힘든 시간이에요. 그렇죠??"




이젠 어딘가 덜 떨어져 보이는 기장의 너스레에 조종사와 캐빈 크루들 사이에 마침내 한꺼번에  폭소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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