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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30. 2022

우린 비난할 대상이 누구인지 사실 잘 모른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제력에 대한 것이다.


수십 아니면 수백억쯤 되는 항공기를 책임지려면 10여 년간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할 것이고 적어도 어느 누구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보다는 확률적으로 더 교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행하기 위해 집을 나선 뒤  마지막 우측엔진을 셧다운 하는 그 순간까지 사실 100프로 계획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는 비행이란 건 단언컨대 없다.


분명 어딘가에서 하나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잘못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승객 문제이건, 정비 문제이건 때로는 전혀 얼굴을 알 길이 없는 관제사나 다른 비행편의 기장이건 간에 우리는 좋든 싫든 당장 문제를 해결해 내야 한다. 사실 최악은 언제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날씨 문제이긴 하다.


내가 부기장 시절  미워했던 기장의 유형이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밖으로 표출하는 이들이었다. 오해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기장들만 이런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불편한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들 사이에 끼어있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벌어질 때 이들이 보통 내뱉는 첫마디는


"뻐억~~" 아마 한국인이라면 "아이씨~" 정도일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문제에서 비난할 사람을 아주 성급하게 찾아내 자신의 감정을 바로 분사한다.


그 짧은 순간에 아주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이미 결론을 내 버린다. 각 부서의 업무환경이나 숨은 배경에 대한 고려는 1도 없이 바로 리더가 판결을 내린다.


항공기는 어차피 어느 정도의 지연을 거치면 출발한다.


문제는 항공기가 떠난 뒤 그 뒤에 무엇을 남겼을까가  아닐까?


공군을 전역한 2003년부터 기장승급을 마친 2016년까지 나는 자그마치 총 13년 동안이나 지독한 '을의 생활'을 겪어보았다.


정말 내가 이 일을 계속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이런  절제되거나 걸러지지 않은 감정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들 때문이었다. 기장들만이 아니다. 사무장, 엔지니어, 지점의 직원들도 모두 해당되는 보편적인 일이다.


민항기 한대를 띄울 때 발생하는 문제는 수백수천 가지이고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그 자리에서 바로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문제를 보고하러 칵핏에 들어온 이는 그 역시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그래야 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면  가끔은 동료들을 불러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그러기보다는 지금 눈앞에 발생한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미그레이션에서 발생한 문제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면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


정비에서 출발 직전에 문제가 발생해 푸시 백이 지연된다면 기장인 나는 바로 정비사를 비난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그 상황을 향해 욕지거리라도 하면 상황이 바뀌기라도 할까?


이미 회사에는 이런 문제가 상습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늘 추적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기장인 내가 해야 할 일은 솔직히 하나밖에 없다.


그냥 차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다.


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경험상 아주 드물다.


기장이 멋있게 끼어들어서  "자 우리 이렇게 해보자!"라고 해결방안을 내밀고 싶지만 그 이전에 크루들이 알아서 답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 기장이 짜증을 내고 있을 거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어쩌겠어요. 좀 지연되겠네요. 준비되면 알려주세요."


이 말이면 족하다. 그들은 그들이 해내야 할 일을 기장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우린 정말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영영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 누구도 비난받아서는 안 되는 경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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