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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24. 2022

세상과 나


과거 이곳의 시뮬레이터 평가는 악명이 높았다. 복합 페일 상황을 무제한으로 주었으니 피평가자로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이때 나온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결국 너를 죽이는 건 너  자신밖에 없다'였다.


아무리 당황스럽고 가슴속에서 서둘러야 한다는 자아의 외침이 쉼 없이 들려와도 서두르면 필시 실수를 하게 되어있다.


얄밉도록 침착하게 하나하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교관들은


'결국 널 죽이는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야! '라고 얘기를 해주곤 했다.


어디 시뮬레이터 평가에만 국한된 말이겠는가?


나의 감정은 시도 때도 없고 뜬금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탄다.  내가 좀 민감한 성격이라 남들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들지만 이쯤 살아보니 세상에 무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더라. 모두들 정도의 차이일 뿐  이 감정의 기복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아내가 말하는 '갱년기라서'라는 말은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난 원래 젊어서도 이랬거든요~~"   


어제는 자정에 집을 나서 이란의 테헤란에 다녀오는 비행이었다. 비행 전에 두어 시간 잠을 억지로 청했다 깨어보니 감정이 온통 헤집어져 있다. 너무도 황당하고 불쾌한 꿈을 꾼 탓이다.


마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재현한 건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이 엉뚱한 꿈 때문에 나의 감정은 분노와 모멸감에 휩싸여 있었다.


서둘러 비행에 나설 준비를 마치고 늘 그렇듯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허락된 단 15분을 타이머에 맞추고


그렇게 짧은 명상에 들어갔다.


평생을 해왔지만 나는 왜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명상을 건너뛰면 나의 감정이 나를 스스로 '자해'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하루에 한 번 아주 짧더라도 명상에 들어갔다 나온 나의 정신은 마치 온통 버그로 더뎌지고 오작동하는 윈도우를 다시 리셋한 것 마냥 지극히 차분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바뀌어 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만든 감정이 만든 자기 파괴적 허상들이 수면 아래로 갑자기 사라진다.


"왜 명상을 하느냐고 물으면 도리어 이렇게 어봐요. 왜 당신은 명상을 하지 않느냐고!"


어느 명상가가 들려주었던 이 말이 다시금 이해가 간다.


"명상을 왜 안 하세요!"


그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그 원리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내 경우 아주 짧은 명상이라도 그 결과는 충분히 압도적이고 명확하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단정적이지도 또 절망적이지도 않은 곳일지  모른다. 단지 헤집어진 나의 온전치 못한 감정이 지극히 뉴트럴 한  세상을 터무니없이 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것뿐이다.


명상을 마친 리셋된 내가  발견하는 세상은 예전처럼 지극히 차분하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결국 나를 죽이는 건 언제나 나 자신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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