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May 28. 2022

기장님 질문 있어요?


서울로 향하는 비행의 픽업 타임은 원래 자정을 조금 넘긴 새벽 1시 20분이었다. 


픽업 타임 20분을 남기고도 플랜이 나오지 않아 확인해 보니 비행이 한 시간 40분이나 딜레이 샛되어 있었다. 노탐(NOTAM: Notice to Airmen)과 Dispatcher Notes를 보니 중국 서부지역의 항로가 폐쇄된 때문인데 공역이 다시 오픈되는 시간에 맞추어  조정하다 보니 그만큼이나 예고 없이 지연된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여행에 지친 몸을 터미널 의자에 쓰러지듯 밀어 넣고 기다려야 했을 승객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그려졌다. 


마음이야 서둘러 출발하고 싶지만 이런 경우 생각 없이 푸쉬벡을 서두르면 미쳐 항로가 오픈되기 전에 등 떠밀리듯 해당 상공에 일찍 도착할 수 있기에 딜레이 셋 된 출발시간보다도 5분을 더 기다려 푸쉬벡을 시작했다. 


게이트와 출발 활주로가 평상시보다 가까웠다. 


계산된 시간보다 일찍 이륙하게 될 상황은 피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국경 진입이 거부될 수도 있었다. 


고고도에서 홀딩이라도 지시받게 되면 기장의 사려 깊지 못한 시간 계산으로 몇 톤이나 되는 연료가 하릴없이 허비될 수도 있다. 


이미 톤당 항공유의 가격이 근래 1500달러를 넘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배나 가격이 뛰어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선 몇 주 전 오른 가격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정부가 모든 국내선 운항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최선은 시동을 걸기 전에 기다리는 것이고 그다음은 이륙 전에 그리고 최악의 선택은 순항 중에 속도를 줄이거나 홀딩에 들어가는 것이다. 


택시를 하며 부기장에게 


“우리 중국 공역 제한으로 0145분(UTC기준) 이후에 이륙할 수 있다고 타워에 미리 얘기해줘!”라고 지시를 했다. 


덕분에 우리 뒤를 따르던 페가수스 항공 에어버스 320이 우리보다 먼저 라인업 지시를 받았다. 그 이후에 연이어 착륙하는 두대의 777을 기다리느라 실제 라인업 지시를 받은 시각은 0150분을 조금 넘겼다. 이러면 완벽하다. 


출발 전 기장방송에 이런 사정을 설명했다. 


지연이 되어 서둘려야 하는데 서두를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을 담았다. 


순항고도에 도달하자 캐빈 크루 한 명이 들어와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쏟아낸다. 


어느 승객이 기장에게 물어봐 달라 부탁을 했다며, 중국 어느 지역의 공역이 왜 폐쇄된 것인지 그 시간은 언제인지까지 궁금해하더란다. 


부담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기장은 승객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변할 의무가 있다. 


해당 지역의 좌표와 통제가 해제되는 시간 그리고 우리 777 이 이 지역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ETA(Estimated Time of Arrival)를 그림과 함께 적어 보냈다. 


“보통 이렇게까지 자세히 설명 안 해준다며 고마워하셨어요.”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었다. 기장에게 이런 질문을 보낼 때에는 나름 용기가 필요하다. 거절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도 물어오신 걸 잘 안다.

작가의 이전글 기장의 권위는 어디까지 인정받아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