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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앞선 비행기를 따라가다

"판단이 안 될 땐 남들에 묻혀가면 대세에 지장이 없다!"??�

이 말 일견 맞는 말입니다. 대학도 군대도 비행에서도 이 말이 통합니다.
머릴 쓸 것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고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변명할 거리라도 건질 수 있습니다.  

보편적이고 상식적 판단이었다고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엔 자기 판단이 없으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다음 조종사의 일상을 같이 들여다보시지요.


조종사가 비행 중에는 계획된 항로를 이탈하여 Weather Deviation을 해야 할 일들이 거의 매번 생깁니다.


‘좌로 회피할까 아니면 우로 회피할까?’ 그것도 아니면 ‘고도를 올라갈까 아니면 내려갈까’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죠.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를 수 분 내에 확인합니다. ‘자신이 옳았다. 아니면 정말 잘못된 판단이었다’를 눈으로 곧 확인합니다. 인간인 이상 늘 옳은 판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비행 중 전방에 나타난 적란운을 회피하기 위해(통상, 이 안에는 우박이 들어 있을 수도 있어 아주 위험합니다) 통상은 풍상 측 즉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회피를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비행 중 우박을 만나 심한 손상을 입었던 대부분 사례가 적란운의 풍하측, 기상 레이다에서는 심각한 반사파가 없던 (얼음은 레이더 반사파가 물보다 적습니다) 지역을 지나다가 발생했거든요.


바람에 날린 난기류도 풍하측이 더욱더 심하니 대게 회피할 방향을 선택할 때에는 우선 풍상 측을 선택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이것과 더불어 이다음에 선회할 방향이 어느 쪽에 더 가깝냐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선회해야 하는 반대 방향으로 구름을 회피하면 돌아가야 할 거리가 더욱 커져서 연료 소모가 많겠지요?


그래서 조종사들은 비행할 때 동일한 목적지로 동일한 속도로 약 50에서 100마일 정도 앞서 비행하는 항공기가 있으면 아주 좋아합니다.


그가 관제사에게 요구하는 데로 따라 하면 되거든요? ㅋㅋ
기상 레이다가 정확한 기상정보를 시현하는 위치는 약 80마일 안쪽입니다. 이 이상의 거리는 늘 정확한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이후 변화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전방의 항공기는 우리보다 좀 더 정확한 기상 레이다 자료에 의한 판단할 것이므로 신뢰할 만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앞선 비행기들이 회피하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이 옳습니다.


대세에 지장이 없는 결정입니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남들 하는 데로 따라가기만 하면 비행이 얼마나 쉽겠습니까만 현실은 다릅니다.


한 번은 두바이에서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에서 100마일 전방에 UNITED 777이 동일한 속도로 역시 북경을 향해 비행 중이더군요. 중국 공역에 들어온 이후 줄곧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다 보니 기상 판단과 회피가 아주 쉬웠습니다.


그런데 북경 도착 약 1시간 반쯤 전에 기상이 좀 더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이때 앞서 있던 United가 관제사에게


"Request Weather Deviation Left Upto 50 Nautical Miles."
좌측으로 기상 회피 50마일까지 요구함.


을 요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같으면 그냥 따라서 똑같은 요구를 했을 텐데 아무리 보아도 바람 방향이 그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촉’이 강하게 오더군요. 그렇다고 바로 반대 방향으로 회피를 요구하기에도 무리가 있어서 일단 참고 기다려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좌나 우 어느 쪽이든 회피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커다란 비구름이 전방 40마일에 다다를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앞선 United 777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결정하고 싶었거든요. 그가 맞았다면 아무 말 없이 계속 진행할 것이고 그의 판단이 틀린 것이라면 반드시 다시 관제사에게 수정 요청을 할 것이니까요.
그렇게 기다리다 이제는 거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즈음에 United 조종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Mayday, Mayday, United 000, We Require Immediate Right Turn due Severe Turbulence."
시비어 터뷸런스로 비상을 선포합니다. 즉시 우측으로 선회가 필요합니다.



그의 교신이 끝나고 뒤따르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이며,


"에미리트 000 Request Right Deviation Upto 50 Miles due to Weather."
기상 회피를 위해 우측 50마일까지 항로 이탈을 요구합니다.


25년간 비행을 해보니 ‘열에 아홉’은 다른 사람이 하는 데로 따라가면 대세에는 지장이 없더군요.


그런데 의심이 들 때는 할 수만 있다면 기다리세요.


기다리는 것이 정답일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정답이 불과 몇 분이 지나면 명확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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