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마닐라 공항(RPLL)은 G20 정상회의 때문인지 갑자기 밀려든 항공기로 초만원이었다.
첫 교신에서 마닐라 레이더 관제사는
"당신의 접근 순서는 15번째입니다!"
이러면 연료가 감당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을 대비해 인근 클라크(RPLC)로 회항하기 위해 준비한 연료가 6.5톤이었으니 홀딩 중에 우린 '버티기(커미팅 Commiting)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커미팅’ 하기 위해서는
쓰지 않고 무조건 가지고 내려야 하는 법정연료 약 3톤을 보존한 상태에서 마닐라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자, 지금 이 순간으로 우린 커미팅(버티기) 하는 거야!"
즉 "이젠, 클라크로 회항할 연료가 안돼!"라는 의미다.
이 버티기 결심이 잘못되면 기장은 소모하면 안 되는 최소 연료 미만으로 착륙해 사고조사를 받거나 종종
이를 피하기 위해 무리한 착륙을 감행하다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악천후속에 발생하는 항공기 사고는 대부분 결과적으로 기장의 잘못된 버티기 결심과 이로 인한 연료 부족과 관련이 있다.
어제 오후 우리가 버티기 즉 커미팅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첫째, 지연에 기상 요인이 없었으며
둘째, 관제소에서 정확히 지연될 시간(EAT: Expected Approach Time)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마닐라에 착륙 후 실제 연료 잔량은 5.5톤이었다. 홀딩 중 예상한 연료와 일치했다.
이중 절대 소모하면 안 되는 연료 Final Reserve Fuel 약 3톤을 제외하면
내겐 연료 부족으로 인한 비상 선포까진
아직도 2.5톤, 약 25분의 여유 연료가 양쪽 날개 속 연료탱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클라크로 회항했다면 잔여 연료는 이보다 더 적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