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는 새벽 2시부터 HOME STANDBY였습니다. 에미리트는 일 년 중 1달 전체를 RESERVE 달로 운영을 합니다. 매일 저녁 6시에 그다음 날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는 하루살이 같은 날이 이어지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 9시경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행히 날이 밝아오는 시간까지 전화가 없기에 ’아 ~ 오늘은 넘겼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아침 8시에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 아 ~ 회사 번호 ‘ ㅠㅠ
"기장님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대기가 딱 두 시간 남았는데, 하하하, 비행 나가셔야겠습니다. 우하하. 모스크바고요. 바깥에 차는 8시 30분까지 준비해 두겠습니다. 30분 드립니다. 하하하"
군을 떠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전 이런 상황에서 다시 비상 대기하던 군인 같아집니다. ‘군대 샤워’를 하고 모스크바 자료를 프린트하고 공항 GROUND CHART BINDER에 넣어둔 마지막 비행 자료를 꺼내 비행 바인더에 옮기곤 iPad를 연결해 FLIGHT PLAN을 다운로드하는 데까지 걸린 총시간은 단 20분.
이때 죄 없이 덩달아 심란한 와이프도 스케줄을 체크해보고는
"출발이 9시 40분인데, 픽업이 8시 30분 이게 가능해?"
그제야 이건 ‘누군가가 마지막 순간에 펑크를 낸 거구나’ 생각이 들어서는 그럼 회사에 도착하면 브리핑이고 뭐고 비행기로 바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서재를 나서며 구석에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고 “난 안 데려갈 거야?”라고 말하는 듯 떠나는 저를 올려다보는 세탁할 유니폼 Bag를 바라보면서 ‘오늘은 널 회사 세탁실에 던져줄 시간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아쉬워하며, FLYING BAG과 SUITCASE를 양손으로 하나씩 힘껏 옆구리까지 끌어올려 들고는 아래층으로 한발 한발 기우뚱거리며 내려가 드디어 대기하던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항공기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 45분 전.
부기장 그리고 사무장과는 얼굴도 기억 못 할 만큼 스쳐 지나가듯 인사를 하고는
"외부 점검은 혹시 했니?"
다행히 2줄 23살 어린 부기장이지만 그 정도의 센스는 있는지 해두었답니다. 그럼 최소 5분은 벌었습니다. 이제부터 밀려드는 서류를 해결할 시간입니다. 보안 점검 서류를 사인해 주어야 보안요원들이 다음 게이트로 이동하므로 먼저 사인해 보내고 NOTOC(화물 서류)에 사인을 하는 와중에 “캡틴, 승객 보딩 해도 될까요?” 이 질문에 항공기 정비 LOG를 슬쩍 확인하고는 보딩 신호를 그제야 주었습니다. 통상 50분 전에 보딩 사인이 나가니 많이 늦지는 않았습니다.
이어서 바로 탑재할 연료량을 결정해주고 그사이 부기장이 준비해 둔 FMS(비행 항법 컴퓨터)를 확인하고 이륙성능 계산을 마치고 나니 출발 30분 전 이어지는 브리핑을 마치고 이륙성능 자료를 항공기 컴퓨터에 입력하고 나니 10분 전.
이어지는 기장방송, 잠시 내가 어딜 가는 거였더라 생각하느라 살짝 뜸을 들이다 “아~~ 오늘 ~~~ 모스크바까지의 비행시간은 다섯 시간..........” ㅋㅋ
다행히 PUSH BACK은 ON TIME.
한 시간 반 전에 나는 침대에서 꼬몰데고 있었는데.
PUSHBACK CLEARANCE를 기다리며 이제야 부기장 얼굴을 제대로 천천히 쳐다볼 여유가 생겨서는
"야, 근데 자네 정말 잘생겼다. 여자들이 많이 따를 것 같은데?"
부기장이 입이 귀에 걸립니다.
이제 그는 내편입니다. ㅎㅎ
5시간 조금 넘는 비행은 그렇게 탈 없이 잘 마쳤습니다.
호텔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승무원들에게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CAPT JAY입니다." ㅋㅋ
이어서 여기저기서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