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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조종사와 수면장애

조종사와 수면장애(Sleeping Disorder)

10년간의 군 수송기 조종사 생활을 마치고 민항에 들어와 첫 이니셜 기종으로 AIRBUS 330을 배정받은 뒤 한동안 수면장애로 고생을 했습니다. 저만의 문제가 아닌 매우 보편적인 국제선 조종사들의 고충입니다.

낮과 밤을 오가는 불규칙한 비행으로 인해 미주 비행 후나 동남아에서 자정에 출발해 인천에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은 육체적으로 극심한 피로감을 줍니다. 이로 인해 수면장애가 오더군요.  

처음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잘하지도 못하는 술도 마셔보고, 처방을 받아 수면제도 복용해 보았지만, 내성이 성겨 조금 지나니 용량을 늘려야 하기에 바로 중단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멜라토닌을 구매해 복용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다지 효과를 보신 것 같지는 않더군요. 신기한 것은 멜라토닌의 부작용으로 늘 악몽을 꾸게 된다는 분도 있더군요.


야간비행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면 피곤함에 쓰러지듯 잠이 들지만, 이 잠은 가수면 상태이지 깊은 수면이 아닙니다. 약물에 취해 의식이 반수면 상태에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 자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저를 아내가 깨운 적도 있습니다.


'아, 내가 이런 식으로 살다 간 일찍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던 순간입니다.
수면 장애가 그래서 무섭습니다.


이후 저는 우연한 기회에 군에서 같이 근무한 한 후배를 만나서 그에게 수면장애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어보게 되고 그날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 친구 하는 말이 "저는 타고난 국제선 조종산가 봐요. 그냥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이 들어요.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이 말을 듣고 이 친구가 군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려보고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저보다 1년 후배인 이 친구는 대대에 출근하면 어디에 있는지 비행이 없는 날은 늘 편대 방 어느 구석에서 늘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비행이나 편대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아서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의 생활습관이 아마도 수면장애를 겪지 않는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는 그때부터 늘 레이오버 호텔이나 비행 후 집에 돌아와서도 낮과 밤에 무관하게 낮잠이나 쪽잠을 거리낌 없이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수면장애가 바로 사라지더군요. 비행 후 아침 돌아와 잠을 자다가 끙끙 앓던 일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한번 잠자리에 들면 4시간이 지나면 눈이 떠집니다. 이상합니다. 호텔이든 집이든 한번 수면은 4시간을 보통 넘기지 못합니다. 이점은 다른 동료 조종사들도 공통으로 겪는 증상이더군요.


수면장애를 겪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메디컬 이슈’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수면무호흡증’이나 ‘폐 기능 저하에 의한 수면 시 산소 포화도 저하’가 이유라면 역시 숙면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말하는 심각한 'FATIGUE' 증상이 나타납니다. 병원에서 24시간 수면 모니터를 통해 이러한 의학적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느 기장은 폐 기능 저하에 의한 수면 시 산소 결핍으로 진단이 되어 레이오버 중에도 의사가 처방한 'Oxygen Concentrator'를 휴대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선은 수면장애를 겪는 조종사라면 평상시 잘 수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쪽잠을 가능한 한 많이 자는 게으른 생활패턴을 시도해 보시길 권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강제로 잠을 자기 위해 자신을 강제하지도 않는 마음가짐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몸과 싸우지 마시고 그때그때 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십시오. 야간 비행이 계획되었는데 잠이 안 온다면 그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눈이라도 쉬게 하는 정도의 노력은 늘 합니다.


그리고 비행 중 Controlled Rest를 적극적으로 취해서 이착륙 중 극심한 피로를 겪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컨트롤드 레스트는 조종사가 좌석에서 잠시 쪽잠을 잘 수 있도록 허용한 절차입니다. 회사마다 정책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게을러지시고 몸이 원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피곤하면 언제 어디서든 먼저 잠부터 자두시길 권합니다. 비행 직후 피곤한 몸으로 운동을 하시거나 투어를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자신의 심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제일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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