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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켑틴 제이 Nov 21. 2019

마지막 비행 VARIG

"타워!, 착륙 후에 어디에 Parking 해야 하는지 확인 부탁합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잠시 후 관제사는 아직 착륙을 위해 접근하고 있는 바릭 항공의 767에 주기 위치를 확인해 주었다. 승객이 탑승하지 않은 페리비행으로 예상대로 오늘은 통상의 터미널 게이트가 아닌 리모트 주기장 한구석이었다.  

기장과 부기장은 벌써 몇 시간째 비행 중 서로 말이 없었다.


둘 모두에게 오늘은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시원하기도 하고 온통 뒤죽박죽인 감정으로 지금까진 그저 이 마지막 비행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타워 관제사가 착륙허가를 내어줄 때까지만 해도.


"바릭 305 Cleared to Land RWY 25"


"Clear to Land Runway 25....... 바릭 …305"


그때였다. '바릭'이라는 콜사인을 마지막에 붙이고는 부기장 라파엘이 갑자기 솟구쳐 오른 감정에 순간 자신에게 깜짝 놀라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나 자신의 감정이 드러났을까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서


기장은


그 순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턱을 타고 내려, 오늘 서럽게 하얀 유니폼 상의 위로 마치 '뚝뚝' 소리를 내듯 떨어져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순간순간 Thrust Lever를 잡고 있던 그의 오른손 와이셔츠의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눈물로 활주로가 가려 번져 보이는 것이리라.


“피프티, 포티, 써티, 트웬.. 티 텐… “


그리고 미끄러지듯 메인 기어의 맨 뒤 쪽 타이어들이 지면에 닿아 회전을 시작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착륙 후 그들은 아직 바릭의 로고가 선명한 767을 리모트 주기장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몰고 가 마침내 파킹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아직 힘차게 돌고 있는 두 개의 엔진을 '하나. 둘' 천천히 SHUTDOWN 했다. 마지막까지 기장은 엔진을 끄고 싶지 않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예상대로 그들을 마중 나온 지상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타워에 연락하고 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스텝 카 하나가 다가와 도어와 연결을 했다.


이제 항공기의 모든 전원을 하나하나 차단한 뒤 마지막 SECURE CHECKLIST를 수행하고는 메인 전원 BATTERY까지 SHUT OFF 차단하자 바릭의 767이 마지막 호흡을 길게 내쉬고는 서서히 정적에 휩싸인다.


마치 숨이 끊긴 짐승처럼 바릭의 767이 조용히 잠들었다. 기장 로베르토도 부기장 라파엘도 한 번도 이 항공기의 메인 배터리까지 차단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그다음 비행을 위해 분주했던 모습이 기억 속에 스쳤다.


작은 펜 모터 소음 하나 없는 적막에 휩싸인 767을 뒤로하고, 힘을 주어 R1도어를 열어젖히자, 비릿한 바닷냄새가 온몸을 휙 감싸더니 이내 바람이 기내를 한 바퀴 돌아 나간다


"우리를 터미널까지 태워줄 수 있겠소?"


상황을 이해한 스텝 카 직원은 귀찮다는 듯 무전기로 어디엔가 통화를 한 뒤 몰고 온 스텝카에 그들을 태우고 조업사 사무실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게중심이 항상 위에 있는 스텝카는 연신 좌우로 실룩거리며 위태로운 모습으로 한참을 달려 터미널에 도착해 그들을 내려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평상시 같으면 안내를 나온 지상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지금쯤이면 대기하던 리무진에 몸을 싣고 호텔로 향하고 있을 텐데.


오늘 이 도시에 방금 비행을 마친 이 두 조종사를 기다리는 바릭의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바릭은 파산했다.’


그들은 지금 그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입고 온 유니폼 그대로, 양손에 끌고 온 SUITCASE와 비행 가방을 옆에 세워 두고 잠시 그들은 공항의 승객용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기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일단 제가 호텔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을 차마 잇지 못하자, 기장은


"상파울루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알아봐야겠지."


이 말을 마치고 희미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인 뒤, 로베르토 기장은 터미널 바닥만 응시한 채 한동안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눈에 어느새 다시 수분이 고여 있었다. 모든 것이 흐릿해진다. 시야도 기억조차도. 그가 일했던 30년의 바릭도…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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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남미 최대의 항공사로 80년 역사를 자랑하던 브라질의 바릭 항공(VARIG AIRLINE)은 2006년 파산했습니다.


한 바릭 기장의 기억에 기초해 그의 마지막 비행을 그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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