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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Mar 23. 2020

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준

찰나의 아름다움은 애석하지만은 않았다

이게 프리지아 향이구나


"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준-" 며칠 전 슈가맨에서 들었던 칵테일 사랑 노래가 생각났다. 봉오리만 여문 채로 집에 들고 온 프리지아는 이제 제법 꽃을 피웠다. 후각이 둔한 나는 가까이 가지 않고선 향을 맡지 못했는데 남편은 멀리서도 프리지아 향이 난다고 말했다. 향도 멋도 없었던 집에 프리지아는 분위기를 들였다.


필요하면 사 -

별안간 떠오른 배달 떡볶이를 주문 해버 리거나, 당장 물 끓일 포트가 없을 때. 놀러 가는 데 입을 옷이 없다거나, 이틀 뒤인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할 때. 지금 먹고 싶거나 당장 필요하거나. 내 쇼핑리스트는 항상 본능적이고 단순했다. 며칠을 안 달내며 최저가를 기다리기엔 너무 성급했고 쿠폰 사용 요건을 깨알같이 읽어낼 바에는 그냥 500원을 더 주고 말았다. "필요하면 사-" 부자는 아닌데 귀차니즘이 만들어낸 촌극은 애매하게 통장만 축내곤 했다.


프리지아 두 단이라.


값싼 향초 값쯤 되려나. 가성비를 따진다면 향초보다 한참은 뒤떨어졌다.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았겠지만 그 날은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꽃을 사고 싶었다. 왠지 프리지아를 사야만 할 것 같은 날. 엘리베이터 구석 2평 남짓한 꽃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갔다. 지하철에서 델리만쥬 가게를 만난 것처럼.


"엄마는 꽃을 왜 좋아하는 거야?"

길가다 꽃만 보이면 걸음을 늦추던 엄마에게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나보다 더 아름답잖아" 나이가 들면 아름답고 화려한 걸 찾게 된다는 뒷 말이 썩 달콤하진 않았다. "엄마가 더 예쁘거든?" 괜히 심통이 난 나는 꽃과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앞장을 섰다.


"꽃도 나이를 먹잖아 금세 시들시들 해지고"

"그래도... 아름다울 때 우리가 볼 수 있잖아"


찰나의 아름다움.

엄마가 생각하기에 인생에서 찰나의 아름다움은 언제였을까. 아름다움을 자연스레 흘려보낸다는 건 지금의 나로선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엄마가 꽃을 볼 땐 왠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시절을 애틋하게 떠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애틋해서 외로워지는 게 싫었던, 엄마 혼자 꽃을 보는 시간은 더더욱 참을 수 없었던 난 그날 이후 괜히 튼튼한 다육이만 집에 선물하곤 했다. 다육이 중에서도 제일 시들지 않는 것만 골라서.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친한 언니는 가끔 볼 때마다 꽃을 선물로 줬다. 계절에 맞게 히아신스, 라벤더를 섞어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엔 새벽시장에서 사 온 꽃으로 리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슬프게도 꽃을 볼 줄 몰랐던 내게 도착한 꽃들은 포장지에 싸인 채 며칠 머물다 사라졌다. 언니는 꽃을 건네며 습관처럼 꽃 보관법을 설명했다. 매번 제대로 듣지 않았던 난 똑같은 곳에서 놀라워했다.


"락스를?"

"그래 락스를 부어야 줄기가 오래 살아남아"


그동안 성실히 놀랐던 덕분일까. 프리지아 꽃병에 조르륵 락스 물을 부었다. 언니 덕인지 몰라도 노란 프리지아 봉오리는 이틀 뒤 꽃을 활짝 피웠다.


찰나의 아름다움은 제법 성실했다. 만개한 프리지아는 꾸준하게 향을 냈다. 거실을 꽉 채우진 못해도 은하수 흐르듯 어딘가 잔잔히 흐르는 모양이었다. 팔꿈치 높이 정도 되는 꽃병 그림자가 미치는 곳, 단 '프리지아 두 단'의 향은 거기까지였다. 향을 맡으려면 부지런히 프리지아 주변을 서성여야 했다.


남편과 나는 버릇처럼 오며 가며 프리지어에 코를 박았다. 살아 숨 쉰다는 건 이런 거구나. 초반보단 쭈글쭈글해져도 진득하게 뿜어내는 생의 향기가 좋았다. 우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을 갈고 죽어가는 꽃잎을 뗐다. 반복되는 일상에 반복될 일이 추가되었지만 귀찮지 않았다. 찰나의 아름다움이 애석하지만은 않았다.


프리지아 향을 맡으며. 어쩌면 엄마는 지금의 충만함을 즐겼을 거란 상상을 했다. 꽃은 지나간 삶의 애환을 불러일으키기보단 그저 향기롭고 아름다울 뿐이었다. 찰나의 충만함이었다. 엄마가 매번 꽃 앞에서 멈춰 섰던 이유. 길가에 피던 민들레마저 지나치지 못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느꼈다. 친한 언니가 금세 져버릴 꽃을 버릇처럼 선물해줬던 이유도.


프리지아는 성실하게 지금을 살게 했다. 그것도 향기롭게.


뒷 북 치듯 칵테일 사랑 노래를 흥얼거리며 또다시 꽃집에 들렸다. 새로운 프리지아 두 단을 샀다. 프리지아랑 함께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프리지아 사진을 찾아보다 프리지아 꽃말을 발견했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해!"
프리지아가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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