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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16. 2020

여러분이 울면 나도 슬퍼요

슬픔의 연대, 세월호 6주기를 기억하며

작년 세월호 5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아이들과 간단한 활동을 했었다. 노란색 색종이에 나비 모양을 오려보는 아주 간단한 활동. 그려보고 오리는 짧은 노동 사이에 그 날을 가늠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나비 모양을 자르고 난 뒤에는 하고 싶은 말을 간단히 적어도 좋다고 했다. 아이들은 글을 하나씩 남기기 시작했다. 힘내세요, 기억할게요. 별다른 말을 적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에 검은색 도화지는 노란나비들로 금세 가득 매워졌다.


그 중에 비좁은 나비 사이로 꾹꾹 눌러쓴 글씨하나가 보였다. "여러분이 울면, 나도 슬퍼요."


그 날따라 그 문구가 눈에 띄였다. 아무 미사여구도 붙지 않은 날 것의 순수함은 그대로 가슴에 꽂혀 하루종일 멍울을 만들었다. 슬펐다. 맞다. 우리에겐 진한 슬픔이 그 날 있었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건, 슬픔 그자체였다. 어떤 의미도 붙이지 않은 슬픔. 그저 앞에 있는 당신이 울고 있어서 나도 울었고, 당신이 슬퍼하는 모습에 나도 눈물을 흘렸던 우리의 모습이었다.


2014년 4월 16일. 난 그 때 한참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강의를 들으러 친구들과 강의동에 모여있었다. 로그인을 하기 위해 포털사이트를 여는 순간, 말도 안되는 표가 하나 있었다. 가운데 떡하니. 투표 카운팅하듯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구조 숫자'를 보는 순간 그날은 거기서 멎어버렸다. 옆에 있는 친구도, 가족도, 익명의 사람들의 하루도 함께 멈췄다.


말이 되지 않았다. 실시간 중계는 하고 있지만 구조가 안 된다는 사실이. 지금은 2014년이었다. 갖은 이유를 붙여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다 차치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생존가능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배는 그대로였다. 사람도 그대로였다. 눈에 보이는 숫자는 사람을 의미하는 게 맞는 걸까. 차갑고 단단한 숫자는 변할기미가 없었다.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지난 듯, 더 이상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이 들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과학적 근거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원하는 답은 하나였다. 한 명이라도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 우리가 너희를 위해 뭐든 하나는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 눈 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간다는 건 슬픔 그 이상의 무기력을 가져왔다. 온 몸의 움직임을 다 빨아 들이는 것만 같은.


우린 줄곧 대화를 하다가도 눈물을 흘렸다. 길을 걷다가도 멍 때리기 일쑤였다. 감정의 폭이 좁아졌고 쉽게 웃거나 즐거워하지 못했다. 문장의 끝은 종종 흐려졌고 맺지 못했다. 어느하나 확실하지 못했다. '교사' 앞에서 누군가는 슬픔보다 앞선 기간제를 이야기했다. 슬퍼하는 유가족 앞에서 누군가는 한 발 앞선 보상금을 이야기했다. 함께 슬퍼하던 이의 본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슬픔이 장기화되자 지겨움을 토로했다. 슬픔을 피하고자, 무능함을 부정하고자 지겨움을 꺼냈다. 절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두 감정은 흐릿한 분노로 이어졌다.


결국 어느하나 확실하지 못했다.


언제 우리는 슬픔을 잃어버렸나. 말을 막고 언어를 지우고 마지막엔 감정마저 사라졌다.


언젠가 슬픔의 연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레베카 솔닛이 말하는 '연대'는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의외로 볼 수 있었던 건 사람들 간의 연대였다. 흔히 선전하는 정치적 계산과 이익의 싸움이 아닌 끈끈함은 서로를 도왔다. 진실 규명을 부정하고 싶은 이들은 어쩌면 사람들의 본능적인 연대 의식을 두려워 할 지도 모르겠다. 연대가 있다면 불안이 없어지게되고 불안을 먹이 삼는 이들은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될테니까. 우리 앞에 쌓인 장막을 하나 둘 걷어내면 남는 건 결국 슬픔 그 자체가 아닐까. 단단하게 손잡고 있는 감정의 연대.


2014.04.16. 그날 이후 우린 자주 침묵 했다. 그 조용하고 묵직한 시간을 기억한다. 그건 어떤 계산도 빠진 슬픔 그 자체였다. 슬픔의 연대는 아마도 새로운 게 아닐 것이다.


"여러분이 울면 나도 슬퍼요" 우린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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