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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Jul 11. 2024

14. 체스키 크룸로프

갈까? 말까?


이 문제로 두 시간 넘게 심한 갈등 중이다.

프라하에서 5박 예정.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다.

게다가 내일 프라하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한다.

그 다음 날과 그 다음다음 날은 각각 콘서트를 예약해 놓아서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다섯 번째 날, 금요일은 떠나기 바로 전날이라

뭔가 맘에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가능한 날은 내일밖에 없는데...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체스키 크룸로프

안 보고 가면 나중에 아쉬워할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당일치기로 가기엔 시간이 너무 조급하다.

그것도 당장 내일 가기엔.


버스를 검색해 보니, 내일 표는 다른 날에 비해 꽤 비싼 값을 받고 있다.     

유럽에 예쁜 데가 한두 군덴가?

겉모습만 훑고 오려고 하루를 몽땅 써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동 시간만 왕복 7시간이 걸린다.

인터넷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를 다녀간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찾아본다.

와아! 하는 감탄사는 요란하지만 뭐 뾰족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갈까? 말까?     



결국 갔다왔다.

버스가 30분이나 연착을 해서 그곳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세 시간뿐이었다.

물론 헉! 소리가 나올 만큼 예쁜 도시였지만 마을의 정체성 자체가 관광지였다.

거리는 단체 관광객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전통시장 하나 찾지 못했고 온통 숙박업소와 식당과 기념품 가게뿐이었다.

그리고 마을의 가치에 비해 기념품들이 너무 뻔했다.


관광객이 알아서 오니 그냥 원래 있던 관광자원에, 남들이 다 만드는 관광상품을, 더 이상의 연구나 개발, 창의 없이 팔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이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인가 보다.

바람도 프라하 만큼 불었다.

따끈한 쌀국수를 먹을 수 베트남 식당이 반가웠다.

매운 고추를 좀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갔다주었는데, 알고보니 그 7개의 칠리고추 조각 값으로 약 1500원이 계산돼 있었다.     


이 정도면 어제의 결단은 그닥 잘 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안전하게 프라하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가는데...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마을 구석구석의 은밀한 매력들이.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전문가의 말을 새겨들어야 했다.


공간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창문들은 위치와 기능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살아가는 마을,

그 마을의 삶이란 그런 거다.

왜 애쓰지 않는 삶을 폄하하는 거지? 혹시 시기심?

비로소 지역 박물관이 보이고, 좀 숨차게 걷더라도 저 성 안에는 들어가 봤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버스 시간은 30분 남았다.

옆길로 새? 말아? 버스 출발은 30분 남았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과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옆길,

갈림길에서 나는 또 망설였고

결국 그 옆길을 택했다.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곳을 보고 싶어서.     


나의 무지와 경솔에 대한 벌로,

프라하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애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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