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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Jul 08. 2024

13. 차표 검사

살까? 말까? 차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대중교통 검표 방식을 ‘암행’으로 하고 있다.

승객이 알아서 차표를 사고 양심껏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철컥! 이나 띵! 하는 검표 과정이 없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버스나 전철의 문이 닫히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같은 승객인 줄 알았던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검표원으로 돌변,  

기습적으로 차표 제시를 요구한다.

무임승차는 어김없이 들통나게 돼 있고 그 경우 혹독한 벌금을 내야만 한다.  

전차 안의 경고문 : 무임승차 = 어둠의 승차 벌금 60 유로!

   

우리는 승객의 윤리의식을 믿는다!

뭐 이런 인간관이 깔려있는 것 같아서 멋있네, 생각하다가도

이건 은근히 사람을 테스트하려고 드는 것 같아 동시에 불쾌하기도 하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친 피해의식이겠지?     

차표를 사서 대중교통에 오르는 보통의 경우

물론 나는 조금의 갈등도 없이 차표를 산다. 그게 마음 편하니까.

비엔나 전철역에서 차표 사기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다.   

  

나는 전철을 타고 마인츠 남부 역에 내려 숙소까지 걸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앙역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앙역에서 파는 5장짜리 차표 묶음을 사야 값도 싸고

다음날 아침 일찍 움직이기도 좋기 때문이다.

남부역 (정확히 말하면 라인골드 할레 역) 에서 중앙역까지는 딱 한 정거장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차표로는 남부역까지만 갈 수 있다.

즉 나는 다음날을 위한 차표를 사기 위해, 남부역에서 내려 다시 차표를 사서

다음 전철을 한 정거장 타고 가 중앙역에 가야 한다.

중앙역에서 나올 때도 물론 철컥! 이나 띵! 같은 검표 과정은 없다.

이런 경우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이 전철은 남부역에서 중앙역을 향해 가고 있다.

암행 검표원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런 방식을 택할까?

양심 훈련? 검표 시스템을 설치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유럽의 시민들은 이 방식이 마음에 들까?

누군가 문제제기를 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방식의 바탕에 깔린 인간관은 무엇일까?

그에 관한 논문 하나쯤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면 우리나라나 다른 국가들은 왜 이런 암행 검표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이 너무 클 것 같아서?

정서적 반발을 고려해서?     

그러면서 어느덧, 암행검표에 걸려 60유로의 벌금을 내는 것과

걸릴 때까지 어둠의 승객이 되는 것

어느 편이 계산상 이득일까를 따져보고 있다.     

그래! 나같이 쓸데없는 계산을 하는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식을 도용할 수 없는 거라고.

그리고 경제적 이득 이전에. 매번 마음 졸이며 건강을 해치고 노화를 재촉하는 손실비용을 계산에 넣어야 하는데 그걸 계산할 능력이 없는 걸...     


전철은 마인츠 중앙역으로 들어선다.

내가 남부역에 내려 차표를 샀는지 안 샀는지에 관해서는 밝힐 수 없다. 다만 벌금을 내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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