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트램 정류장을 찾아가는 거다.
트램 애호가, 트램 신도인 나는 가까이에 보이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외면하고,
다리 아프게 걷는 한이 있더라도 트램을 선택하곤 한다. 거기엔 갈등이 없다.
그래서 구글맵의 안내를 졸졸 따라간다.
프라하에는 두 종류의 트램이 있다.
새것
그리고 헌 것
새 트램은 길바닥과의 단차가 낮은 반면, 헌 트램은 계단을 세 개나 올라가야 탑승할 수가 있다.
트램 정류장까지 거대한 가방을 질질 끌고 간 나는
제발 내가 타야 할 6번 트램이 새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다는 것이 인류 보편의 경험!
빨간 줄의 헌 트램이 빈티지 포스를 풍기며 다가온다. 생각들이 휙휙 지나간다.
보내고 다음 트램을 기다려 봐?
아냐, 다음 트램이 새거라는 보장도 없는걸?
그래도 헌 거 다음엔 새거가 오지 않을까?
잘하면 계단 위로 가방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러는 동안 스르르, 트램이 내 앞에 와서 선다.
나는 자동 기계인 양 손을 들어 반짝이는 오픈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역시 머리보다 몸이 빠르다.
문이 열리고, 내 앞에 세 칸의 계단이 펼쳐졌다.
가방을 있는 힘껏 들어 올렸으나 성과는 고작 계단 한 칸.
앞길이 막막하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힘센 팔이 가방을 난짝 들어서는 트램 안으로 올려 놓고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구의 팔이었을까? 분명 그 팔의 주인이 트램에 탔을 텐데.
경황이 없었던 나는 승객들을 둘러보며 ‘아이고 고마워서 어떡해?’ 속말을 되뇌일 뿐이었다.
내릴 때가 됐다.
가방을 올릴 때보다는 내리는 게 훨씬 쉬우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자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계단 세 칸이 주르륵 펼쳐지고,
있는 힘껏 가방을 들어 올려 한꺼번에 두 칸, 가방을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
어찌어찌 땅바닥을 밟은 나는 휘청! 가방 무게에 딸려가 그대로 자빠질 위기에 처하고,
그 순간 멍하니 트램에 오르려고 서 있던 어느 중년여성이 본능적으로 나를 막아내고,
나는 그 덕분에 중심을 잡고 서며 또 본능적으로 외쳤다.
땡큐 쏘~ 머치!
그래서 또 깨닫는다. 나의 무분별한 낙관주의.
딱 봐도 알잖아. 나 혼자는 어렵다는 걸.
직접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인정을 안 하는 나라는 인간!
하지만, 이렇게 똑똑히 배운 건 오늘의 소득이다.
트램 하나쯤은 그냥 보내고 좀 기다리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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