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빈 여행가방 (최종회)

- 양자택일 여행가방 마지막 이야기

by 김호양이

해외여행의 수행 미션 중에 ‘선물’이라는 항목이 있다는 걸 모두 공감할 거다.

떠나기 전에는 일단 “아무것도 안 사 올 거야.”라고 밑밥을 깐다.

그건 나의 과소비를 스스도 차단하기 위한 마음가짐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큰 기대를 예방하는 차원의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외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또한 ‘선물 사기’라는 것 또한 모두 공감할 거다.

새롭고, 흔하지 않고, 한국보다 싸고, 무게나 부피가 많이 안 나가고, 받는 사람의 즐거운 반응이 예상되는 물건을 볼 때면 안 살 수가 없다. 안 사서 후회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 와서 쓸모가 없었던 적은 없다. 주로 마트나 문구점, 박물관의 굿즈샵... 이런 곳이 사냥터가 된다. 가성비 안 좋은 관광기념품 가게 따위는 기웃거리지 않는다.

비엔나, 훈더트바써 건축기념관의 굿즈샵에서


여행 초반에는 이 ‘선물’ 미션을 알뜰하게 수행하기 위한 작전을 짜고 머리를 쓴다.

이건 가족 A, B, C, D, E

이건 친구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이건 모임 1, 2, 3, 4, 5에 단체 선물로


그러다가 며칠만 지나면 작전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앗! 이건 친구 '라'에게 딱이잖아. 하지만 '라'에게 줄 건 이미 샀는걸?

그렇다면 그때 산 선물은 가족 C에게 주고 이걸 구매....

그러다가 며칠이 더 가면 엉망으로 엉키고 만다.

가족 A의 선물을 샀던가? 안 샀던가? 그런데 A는 이걸 주고 B는 이걸 주면 그림이 좀 이상한데...

이건 내가 갖고 다른 걸 사야...

그러다가 또 며칠이 지나면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에라, 모르겠다. 적당한 거 있으면 보이는 대로 사고 비싸면 못 사고, 없으면 사지 말자!

그렇게 하나 둘, 가방 속 짐 사이에 쑤셔 박혀 잠시 잊힌 물건들이

귀국해서 가방을 푸는 동안 마치 흙 속에서 유물이 발굴되듯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다 어디 들어있었지? 싶게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줄줄이 나와 수북이 쌓인다.

가방 속에서 나온 선물용 물품들

선물 분배의 단계에서는 작전이고 계획이고 계산이고 다 필요 없다.

만나는 사람 선착순, 선물무더기 속에서 그중 제일 적당해 보이는 물건을 골라 전달한다.

과자 같은 건 그 기간 중에 야금야금 내가 먹어 치운다.

머지않아 선물은 동이 난다.


선물분배까지 끝나 이제는 정말 텅 비어 버린 가방의

바퀴를 닦고, 먼지를 털고, 지퍼를 닫아 집 안 한쪽 구석에 세운다.

'끙' 소리를 내야만 들 수 있었던 가방이 사뭇 홀가분해 보인다.

20일의 여행 동안 그 가방 안에는 사실,

물건 말고도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이 담겨 있어 더 무거웠었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 살까? 말까?

여기 먼저? 저기 먼저? 이것? 저것?

걸을까? 차를 탈까? 바꿀까? 둘까?....

여행은 쉴 새 없이 닥치는 갈등으로 채워져 있고,

여행자는 늘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한다.

선택과 결정은 늘 어려웠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결국 그것을 해냈다.

그 갈등과 선택의 무게까지 견디느라 나의 여행가방은 조금 더 낡았을 테고,

덕분에 나는 아주 조금 더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양자택일 여행가방아, 다음 여행도 갈등의 무게는 여전할 거야.

그래도 우리, 다시 잘 해 보자! (끝)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나의 여행가방




이전 28화30. 외국어 잘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