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알맞게 익은 시기
"뭣 때문에 서로 좋은 순간을 적절하게 만나지를 못하고 서로의 등만 바라보며 애를 태워야 하는 거죠?" ...... 가장 좋은 순간을 가장 알맞은 때 만나는 사람은 행복하겠지.
_신경숙 <깊은 슬픔>, 160p
가장 좋은 순간을 적절하게 만나는 남녀의 행복만큼, 가장 알맞은 때에 가장 알맞은 순간을 보냈던 시기였다. 프랑스에서 같은 학교와 교회를 다니던 루꺄오빠는 예술도 알아야 보인다고, 대학 교양 인강으로 미술사를 공부하더니 루브르나 오르세에 가면 작품마다 멈춰 서서 설명해주었다. 공부하는 습성이 이어진건지 몰라도, 한국에 돌아온 루꺄는 얼마 있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부 도시계획론 수업에서 주워들은 ‘바람길’을 필두로 같은 학교 공대생인 J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파리 외곽에서부터 시내까지 몇 군대를 함께 돌아다녔는데, '오 여긴 파리의 축이야!'를 난발하며 건축과 공간 얘기를 서로 잔뜩 늘여놓았다.
유독 낭만주의자였던 S는 '파리의 이런 낭만을 언제 즐길 수 있겠니?'라는 말을 습관처럼 뱉었다. 낭만론에 넘어간 어느 날,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화와 청바지를 입고 모델들이 줄지어 서있는 샹젤리제의 클럽에 들어갔다. 심장 박동 소리를 연상케 하는 콜드플레이의 ‘A Sky Full Of Stars' 전주가 나오자마자 '오빠! 이 노래는 무조건 춰야 해요!' 하며 스테이지로 튕겨 나가다시피 달려 나갔다. 좋아하는 노래가 운명처럼 등장해 뛰어나갔던 긴박함, 클럽에 나온 직후 아무도 없는 새벽 샹젤리제를 걸었던 적막은 아직도 생생하다.
밤에는 같은 기숙사에 살았던 제노 언니의 방 문 앞에서 맥주와 먹을 것을 잔뜩 들고, 밤새도록 이어질 수다에 설레어했다. 이따금씩 혼자 방 안에서는 고독을 일삼는 핑계로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불안과 걱정을 토해내는 22살의 글을 썼다. 간간히 한국문화원에서 책을 빌렸는데,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며 답답한 연애사의 실마리를 발견할 때마다 이마를 탁- 치기도 했다. 카뮈의 이방인과의 연은 시크릿 파리에 딸려 나온 중고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학교 가는 길, 지하철 안 프랑스 사람들 틈새로끙끙 읽어오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이방인에서 벗어난 시점에 결말을 지었다. 그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방인은 3년 후 재해석되어 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읽혔다.
전공과 무관한 경영 수업을 프랑스식 영어로 배웠는데, company를 '콤파니'로 부르는 발음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동안 쌓아온 얼마 되지 않은 영어 실력은 여지없이 떨어지리라 직감적으로 예감했다. 그 불안에 파리 월스트리트 학원에서 영어를 배워야 하나, 다소 엉뚱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토로했다. 그럼에도 오피스 상권이 즐비한 라데팡스에서 학교를 다녔던 경험은, 프랑스 회사원들의 일상을 경험했던 또 다른 생경함이었다. 출근길, 바삐 움직이는 파리지앵들 사이 발맞추며 그들의 삶 속으로 밀접하게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계단 어디든 쪼그려 앉아 도시락이니 샌드위치를 먹는 풍경도 낯섦이었다.
그때에는, 이런 일상들이 소중한지를 몰랐다. 연달아 커피와 와인, 맥주를 마셨던 순간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늘상 흘러가는듯했다. 1.02유로를 웃돌던 버터 가득 발린 크로와상도 어디서든 손쉽게 사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퐁피두니, 오르세나 루브르도 굳이 다음 해를 기약하지 않아도 금방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줄지어 쌓아 놓고 먹으리라 작정했던 납작 복숭아는, 한 여름철에만 맛볼 수 밖에 없었다. 6개월 동안 내가 디뎠던 파리는 한 철의 여름과 가을, 겨울뿐이었던 것이다.
한 때 전시 기획자를, 건축가를 꿈꿨던 꿈은 한국에 돌아오자 현실에 치이며 점차 사그라들었다. 녹이 쓴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출퇴근을 반복하며 꿈이니 이상보다도 '저녁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빨래는 말랐는가?'와 같은 중대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들에 뒤쳐지기 일 수였다. 그럼에도 일명 예술을 꿈꿨고, 예술적인 것들에 둘러 쌓여 예술을 살았다고 자부했던 시기가 내게 분명 존재했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다시금 삶의 적기가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또 다른 적기는, 이전과는 다른 형식으로 찾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인생의 적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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