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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 Sep 25. 2023

그렇게 우리 가족은 독일로 왔다.

독일 이민 가방 싸던 날의 기억

2016년 7월 6일의 기록

"안녕~ 무사히 독일에서 만나자."


2016년 7월 6일. 독일로 갈 국제 이삿짐을 보내며..


언제나 그랬듯,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고맙게도 화창한 날씨 덕에 무사히 짐을 보냈다. 어제의 폭우, 집중 호우는 오늘의 화창한 날씨를 전혀 예측하지 못할 법했지. 기상청조차도. 하지만 왠지, 근거도 없이, 날씨가 좋아질 것만 같았다. 물론 안 좋았어도, 그것도 내 몫이었다면 감당했을 테지만.


인생도 그렇다.

한국에서 새로운 집에 이사한 지 1년 반 만에 또 이렇게 해외 이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늘 계획을 세우고, 예측해 보지만, 내 인생의 큰 흐름에 때로는 몸을 맡겨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날.


남편의 퇴사와 함께, 독일 회사 취업이라는, 내가 예측 못한 큰 변화가 다가왔지만, 그 변화를 수용하고, 선택한 건 결국 나 자신이다. 흔치 않은 기회가 왔을 때, 기회의 신이 도망가기 전에 되도록 빠른 시간에 결정을 내린 것도, 결정을 내린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적극적으로 준비한 것도..


나의 선택에,

이제 다만 책임을 지면 된다.


앞으로 우리 가족에게 펼쳐질 미래가, 오늘 날씨처럼 화창하거나 또는 어제처럼 흐리더라도.

"인생은 버릴 토막이 없다."는 배우 김혜자 님의 말씀처럼,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고생이 된다면 고생한 대로, 외로움이 찾아온다면 외로운 대로, 행복함이 느껴진다면 행복한 대로.. 모든 것이 다 나에게 좋은 가르침이 될 거다. 그만큼 난 더 빨리, 더 깊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2016년 7월 21일의 기록

독일에 입성하다


2016년 7월 20일. 비행기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던 날, 숙소에서.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독일에 입성했다. 이민 가방 6개와 아이들까지 챙기느라 어깨가 아프다는 거 빼고는?!


오랜만에 느끼는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 자유로움. 그리고 이색적인 분위기와 사람들도 괜찮네. 며칠은 여행 기분이 들 것이고, 바쁜 일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나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싶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내가 지켜야 할 두 아이가 있기에 한없이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는 거.


이미 왔으니,

이제는 뒤돌아보지 말고,

잘. 살자. ♥




 2016년 9월 3일의 기록

40피트 컨테이너 짐이 도착하다♥

2016년 9월 3일. 클래식 피아노와 함께 다시 만난 나의 한국 짐.


그 사이 거주지 등록 (Anmeldung)도 마치고, 아이들 국제학교 등록 후 적응도 마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짐이 언제나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날들.. 아이들이 학교에 간 틈을 타 기쁘게 정리해 본다. 따뜻하고 인자하신 집주인 할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다.


한국에서 짐을 쌀 때 뭘 이렇게 바리바리 쌌을까. 여기에도 사람 사는 곳이라 웬만한 것들은 다 있었는데...  귀이개, 한국책, 가구 정도만 간단히 챙겼어도 될 뻔했다. 바리바리 싸 온 상한 음식들 버리느라 혼났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23년 9월이 되었다. 만 7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 사이 쪼꼬맸던 나의 아이들은 나보다도 훌쩍 키가 커버렸고, 남편과 나에게는 흰머리도 생겨났다.


3년만 독일에 살아보자고 가볍게 물 건너온 우리 가족. 남편은 회사에 꾸준히 다니고 있고, 나는 동반휴직 중이었던 한국에서의 초등교사직을 23년 9월 1일 자로 의원면직하고, 공식적으로도 전업맘이 되었다. 아이들은 독일 국제학교에서 3년, 2020년부터 독일 공립학교에서 4년째 학업을 이어가고 있고, 거주 안정을 위해 남편은 2018년 11월 독일 영주권 (Niederlassungserlaubnis Deutschland)을, 나는 2022년 1월 유럽 영주권 (Daueraufenthalt-EU)을 받았다. 그 사이 우리는 독일에서 월세, 실거주용 하우스 매입(2018년 4월

공증), 대도시에 투자용 새 아파트 매입 (2021년 4월 공증) 등의 굵직한 일들도 벌렸다.


독일로 이민 온 지 7년이 되니 입독 초반의 설렘, 두려움, 현실 자각, 충격, 고달픔 등의 감정이 많이 잔잔해지고, 기억들도 자체적으로 삭제 및 재정리가 되어 정리 상자 안에 고이 포장해 두게 될 정도가 되었다.


아직도 타지에서 살아내는 것이 녹록지 않지만 첫 적응의 충격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이제는 조금 정신을 차렸으니 그 간의 일들을 정리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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