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교
바야흐로 첫 등교날 되시겠다.
며칠 전 그래도 등교 첫날에는 따라가야 하나, 데려다줘야 하나 고심이 되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에이 뭐 하러~~ 우리끼리 갈게" 하며, 나를 유난스러운 엄마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특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단순히 '데려다'만 주고 오는 '이동'의 문제라면 내가 개입할 필요 없이 스쿨버스를 태우면 되긴 했다. 나는 내심 어쩌면, 요 녀석들이 긴장된다거나 하는 핑계로 따라가서 데려다 놓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첫날이라는 핑계로.
내가 두 녀석의 보호자로서의 역할로 아이들의 삶에 개입하는 비율보다는, 두 녀석 스스로 부딪히며 삶을 자립해 나가는 비율을 늘려야 하지 않나.. 늘 생각하면서도 종종 노파심에 말이 앞선다. 아이들은 이미 상당 부분 자립적인데 말이야. 아이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첫날부터 바로 아이들끼리 스쿨버스로 등교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의 학교의 일과시간이 8:15 ~ 3:30으로, 좀 이르게 시작한다. 게다가 남동생집이 학교와 20-30분 거리에 있다 보니, 스쿨버스 픽업 시간이 7:35 am이었다. 시차가 있다 보니 내 생체리듬상으로는 5:35 am에 차를 태워 보내는 미라클모닝 스케줄.
여기 오기 전 스쿨버스 픽업 포인트에 대해서 학교와 의사소통이 영 시원치 않아서, 제대로 찾아 픽업해 주러 올지 불안함도 있었거니와 망할 핸드폰 유심은 아직도 개통이 되지 않아 먹통인 상태여서, 전날의 피곤을 해소하려 푹 자려고 했으니 밤새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 하느라 안갯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으로 밤을 보내니, 그새 아침이었다.
아이들도 적잖이 긴장했는지, 아님 내가 어젯밤에 신신당부한 것 때문인지 "애들아, 학교 가자" 한마디에 벌떡! 일어났다. 어제 마트에서 고심해서 골라온 시리얼을 먹으면서, 미리 전달받은 시간표와 브리핑을 해주었다.
더불어 첫날이니 만큼 아무래도 엄마의 노파심에 나오는 당부를 했다.
1) 선생님이 하시는 영어가 알아듣기 어려워도 내일, 모레는 더더 쉬워질 테니, 너무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말자.
2) 잘 모르겠으면 더 잘하는 한국친구에게 묻고, 선생님에게도 다시 묻는 연습을 해보자.
어떤 상황이든 별로 걱정 없이 자기 색깔대로 사는 첫째는 첫째대로, 불안이 높고 상대적으로 오빠보다는 영어가 부족한 둘째는 대로 엄마의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이같이 가면 서로 보완이 늘 되는 아이들이었으니, 잘 해내리라 믿어본다.
나름 첫날이라 꾸며주겠다고 어린이왁스도 챙겨 오고 다림질한 피켓 티셔츠도 꺼내왔는데, 첫째 녀석이 '엄마, 첫날이라고 이렇게 꾸미고 가는 게 더 안 좋아, 이러고 내일, 모레부터는 평범하게 하고 다니면 첫날만 멋있고, 계속 별로네 이런 생각 들잖아. 차라리 첫날엔 평범히 가고 천천히 멋있어지는 게 쿨한 거임' 라며 거부한다. 이 자식 인생 2회 차인가..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왁스도 죽어도 싫다, 피켓티도 죽어도 싫다고 버티는 아들 녀석과 실랑이를 하다가 포기했다. 딸내미도 오늘 체육수업이 있으니 편하게 입겠다며, 원피스를 거부하고 편한 옷을 꺼내 입고 왔다. 그래, 가뜩이나 적응이 젤 중요한데 편한 옷차림, 편한 마음으로 가는 게 낫지. 니들이 엄마보다 낫다.
그렇게 지난여름방학의 어느 날의 평범한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 이곳에서의 첫 등교도 시작되었다.
일찌감치 픽업장소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아파트 로비에는 다음 주에 다가올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했다. 서머 크리스마스는 처음인 아이들은 이 에어컨 빵빵한 로비에서 마주한 산타할아버지가 어색하다며 둘이서 또 무한의 크리스마스 공상스토리를 이어나간다.
나는 사방이 뚫려있는 아파트 1층의 어디에서 스쿨버스가 들어올지 몰라 우리 말고 다른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포인트에 서서 0.5초 간격으로 자체 감지 센서를 작동했다.
다른 스쿨버스가 줄줄이 와서 애들을 다 태워가는데.. 어라? 7:30 이 지났는데도 버스는 안 온다.. 왜지..왜지..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아파트단지를 잘못 알려줬나?10분 내로 안 오면 그랩 타고 데려다줘야하나? 늦으면 연락이 올 텐데 왜 아무 말이 없지?이 아파트에는 우리 말고 타는 애는 없나?, 하 전화도 안되고 미치겠네..' 한 1-2분 머릿속이 시커메졌는데, 저 멀리 AIS 가 써진 버스가 들어온다. 아이참~~~ 놀랬잖아요.
선생님이 내리셔서 첫날이라 늦었다며, 아이들에게 "이리 와~~ 조심~~" 하고 한국말을 하신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조금"이라고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대답하시는 귀여운 베트남선생님.
덕분에 잠깐 긴장했던 아이들 표정이 이내 풀린다. 이 순간까지 서로가 티는 안 냈어도, 애들이나 나나 첫 등교라고 은근히 긴장을 했던 거 같다.
"엄마 갔다 올게!! 안녕!!"무슨 하수구에 물이 빠지듯, 스쿨버스에 빨려들듯 아이들이 타고 스스륵, 스쿨버스 도어가 닫힌 뒤 애꿏은 기사아저씨와 손인사를 하며 버스는 그렇게 떠났다.
아...드.디.어.갔.다.
휴, 이 큰 숙제를 해낸 이 기분.
엄마들은 알 것이다.
스쿨버스 태운 후 닫히는 슬라이딩 도어의 드르륵, 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유치원 등원시킬 때 듣던 그 슬라이딩 도어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짜릿한지.
이곳에 와서 진짜로 이 캠프를 등교시키는 이 순간. 몇 달간 준비해 왔던 내 첫번째 임무의 절반을 해낸 셈이었다. 고생했다 엄마야.
이제 아이들이 캠프에 적응 잘하고, 즐겁게 지내다 와주는 일만 남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엄마의 영역은 아니올시다. 그간 다져온 아이들의 생활력과 적응력이 너희를 잘 지내게 해 주리라 믿고, 이제부터는 내게 주어진 이 반나절의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것이 나의 영역이다.
오늘은 문제의 유심을 해결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미션도 없다, 조금 즐기는 것 이외엔^^
아침 7시 40분. 아파트단지 건너편으로 넘어가 로컬동네를 괜스레 걸어본다. 쌀국수집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카페앞 특유의 베트남 작은 플라스틱의자에 옹기종기 앉아서 소담을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한국의 아침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생동감과 느긋함이 동시에 펼쳐진 그들의 아침의 여유가 부럽고 탐이 난다.
여기 있는 동안은 나도 이곳의 아침을 빌려 쓰는 사람이니, 저들처럼 아침을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그게 한 달"살기" 아니겠는가.
평소에는 절대 안먹는 아침이지만, 오늘은 나도 쌀국수를 한 그릇하고 찐한 베트남 커피로 하루를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고 북적북적 로컬사람들이 가득한 쌀국수집으로 걸어 들어가본다. 베트남 사람들 사이로, 베트남속으로 조금씩 걸어가본다.
이제부터는 시작해볼까? 내 진짜 베트남 여행. 하이 베트남! 신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