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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 Feb 10. 2023

[호찌민 한 달 살기]걷는사람

나는 걷는행위를 좋아한다. 내가 가진 체력안에서 무리하지않고 할 수있는 가장 자신있는 운동이며, 걷다보면 머리속에 흩어져있던 여러 단어와 문장들이 다듬어지며 덩어리의 문단이 되는 시간이 된다. 더불어 내 걷는속도와 맞춰지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온전히 느끼며, 목적지에 나를 전달시키는 그 완수가 좋다.


겨울을 보내며 내내 걷는것이 고팠다. 제 아무래 좋아하는 걷기라지만 추위에겐 문장조차 뺏겨버리고는 하니까.


호치민에 가면 실컷 걷고 오겠노라고, 내내 나를 달래며 걷고싶은 맘을 삼켰다.


유심칩을 새로 바꾸고 나와 몰을 가려고 그랩을 부르려다가, 그냥 걷기로 한다. 날씨가 살짝쿵 더웠지만 이 얼마나 목마른 여름이었나. 적당히 땀이 나도 사우나에서 나는 보람찬 땀처럼 그마저도 좋을것 같았다.

항상 노트북이며, 장바구니며 오른쪽 어깨에 일정무게를 얹지않으면 불안한 나인데 오늘은 유심칩과 지갑, 핸드폰이 유일한 내 소지품이었다. 어깨가 가벼운 몇안되는 이런날, 기필고 나는 걸어야 한다.


이제서야 빵빵 터지는 핸드폰의 구글맵을 켰다. 그랩을 타면 5분거리겠지만 걸어서 30분. 점심을 먹기전 적당히 배를 고프게 만들기에 충분한 걷기 시간이었다.


음악을 들을까 했지만, 이 낯선도시의 소음조차 내게는 음악처럼 들리는듯하여 에어팟을 넣어두었다.(결국 한달동안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이왕 내집과 내차와 내 역할을 떠나온 이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일부러 불편하고 수고롭게 걷고 싶었다.

구글맵은 빠르고 편한 길을 계속 알려주었지만, 대충 목적지의 방향을 알고 있었고 멀리서도 몰이 보이길래

일부러 조그만한 길들로 돌아돌아 걸었다. 외갓댁의 추억이 있는 버드나무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걸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외할머니얼굴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길은 좁았지만, 내 의식이 한걸음에 한장면씩 무한히 확장되는 이 팽창감이 좋았다.  버드나무 그늘밑에서 들어서면 종종 바람이 부는데, 두세걸음 걷고 나면 얕은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그 강약약 리듬도 좋았다. 지나가다 고양이가 보이면 냐옹 냐옹~ 말을 걸기도 했고, 일년넘게 신던 내 슬리퍼의 왼쪽면이 유독 많이 닳았다는 것도 처음알게 되었다.



걷고 있으면서도 더 걷고 싶었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갈급해지고 있었고, 나는 이미 몰앞에 도착해버렸다. 처음와보는 몰인데,나는 아무런 새로움이나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인양품과 H&M..익숙함아니라 지루한 이 장면에 걷던 피곤보다 더한 피로감이 올라온다.  어쩌냐, 나는이제. 이런 몰이 너무 재미가 없네. 모든것이 너무도 편리해보여 되려 불편해진다.


오르막 조차 잘 없는 도시. 나무가 많은 도시. 걷기에 좋은 도시에 왔으니 적어도 여기있는동안은, 가급적 많이 걸어야겠다. 불편하고 수고롭게 걸어야만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을 많이 마주해야 겠다.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어떤 순간들을 찾아내며 지내야 겠다. 가져온 슬리퍼를 닳도록 쓰고 버리고 가는 대신, 많은 문장들을 만들고 내 주먹안에 많이 쥐고 가야겠다.


글로쓰진 못해도 손가락으로 쓰는 손바닥편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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