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후 수영장이 있는 일상
아이들이 베트남 생활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는 수영장이었다. 내가 지냈던 2곳을 포함,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수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긴, 4계절이 여름인 이 나라에선 놀이터보다는 수영장이 일상적으로 더 필요한 삶의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4시쯤인데 해가 지는 5시 30분까지 거의 아파트 수영장을 가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누가 묻지 않아도 집에 오면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바로 갈아입었다. 집에 와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장 가기까지는 저스트 10미닛. 한국에서 수영장을 한번 데리고 가려면 챙기고, 이동하고, 씻고 말리고의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서 잘 안 가지는데, 이렇게 쇼트커트로 다다를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는 건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진 잘 모르겠지만.^^
게다가 우리도 아파트 헬스장을 안 가듯(나만 그런가), 아파트 수영장에 아파트 주민이 없어 늘 한산하다.
여기 사람들은 햇살이 뜨거우면 더워서 안 가고, 날이 선선하면 물이 차가워서 안 가고.. 뭐 그런 이유로 잘 안 간다고 한다. 그래 사람이 뭐든 흔해지면 아쉽지 않지.
워터파크란 본디 물 반 사람반이고, 여름의 수영장은 콩나물국 같은 빽빽함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평일 호텔숙박정도를 해야 구경할 수 있는 이 사람 없는 수영장은 안쓰면 아까운 한달짜리 쿠폰같은 느낌이었다. 한 달 내내 거의 제주 앞바다의 수준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사실 해가 지는 시간이라 물이 살짝 차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참아가며(?) 사람 없는 수영장에서 바다수영하듯 휘저으며 다녔다. 다이빙을 했다가,잠수를 했다가,수영을 했다가,물건 찾아오기 게임을 했다가, 정말이지 내 새끼들이라 그런가.. 참으로 잘 논다. 이 시간만큼은 방관육아가 존중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야에 아이들을 두고 안전스캐닝만 확보하면 선베드에 누워서 책을 보기도 하고, 일몰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일몰을 감상하는 게 가능했다.
오후하교 후 수영까지 하고 집에 들어오는 일과가 주는 육아베네핏의 화룡정점은 바로 저녁식사였다.
우리 아이들이 입이 짧고 밥 먹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한국에선 저녁을 먹이다 보면 정말이지 자아분열이 몇 번씩 오곤 했는데, 여기서는 하루종일 한식을 못 먹은 굶주림+오후 수영까지 한 효과덕에 저녁식사가 10분 컷으로 줄었다. 게다가 양도 늘어서 밥도 많이 먹고 밥 먹고 망고 1개 후식까지 깔끔히 끝내는 기쁨!
내 평생 몇 번 느껴보지 못한 식사의 희열을, 이곳에서는 매일 누리고 있으니 수영만세를 안 외칠 수 가 없다.
어디 평일뿐이랴, 주말에도 2-3시간 정도 별달리 할 게 없으면, 언제든지 수영장을 갈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건 굉장한 베네핏이었다. 뭘 어디를 데려가야 한다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물이 비교적 따뜻할 한나절에 해질고민없이 실컷 수영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재미있는 일과였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조차도 수영장을 매일 오고가다보니 입수할 용기가 덜컥 생기더라? 팔에 튜브를 끼고 그순간만큼은, 수영만큼은 보호자가 아닌 친구가 되어 종종 첨벙첨벙하고 놀 수 있었다. 어쩌다의 내 특별입수날은 아이들에겐 특별공연같은, 재밌는 날이 되기에 기뻤다. 나역시도 매일밤 마신 맥주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물장구 발길질로 승화시키다 보면 참회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 외에도 수영장이 좋은 현실적인 이유는 계산기를 한 번만 두드려봐도 나온다.
예를 들어볼까.
우리 가족이 여름마다 가는 수원의 야외 수영장이 있는데 거기 1인당 이용료가 18,000원 * 4명 = 72,000원에 자릿세(?)까지 5만 원 추가해서 보통 하루 가는데 12만 원 이상의 비용을 내야 한다.
물론 취사가 가능하다는 점+하루종일 논다는 점의 메리트는 있지만 그곳 시설이 노후한 거나 사람이 빽빽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 12만 원의 값어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근처에 가족끼리 하루종일 물놀이 편히 하고 올만한 그만한 곳이 없어서 늘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훨씬 더 쾌적한 환경, 많아야 5명이 있을까 말까 한 밀집도, 취사까진 아니지만 선베드에 누워 맥주 마실 수 있고, 하루종일 심지어 밤까지 수영할 수 있고, 물높이도 어쩌면 딱 우리 둘째 턱밑까지인지 너무 깊지도 않고.. 이모든 것을 다 갖춰도 별도의 수영장이용료 없이 사용하는 건 너무 큰 혜택이었다. 수영만 한 달 잘하고 가도 정말 비행기 값은 뽕뽑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수영복이 마를 틈이 없었던 한 달이었다. 수영을 매일 할 수 있어서 좋겠다,라는 기대감으로 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상당 부분을 수영장에서 보내고, 수영장이 아이들을 키워주었다.
하교 후 매일 아파트 수영장을 갈 수 있는 일상. 베트남 한 달 살기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