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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Dec 07. 2020

두족류의 제왕 '문어'

두족류 :  척추가 없는 연체동물 중 다리가 머리에 붙어 있는 생물

 문어를 낚시로 잡는 다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황당할 만도 하다. 도대체 어떤 미끼를 달며, 낚시 바늘로 문어를 어떻게 잡는다는 말인가?


 원래 예로부터 문어는 통발 어업 방식으로 잡았다. 문어 잡이는 주로 단지를 이용한다. 긴 항아리 모양의 단지를 줄에 줄줄이 매달아 바닷속 바닥에 내려놓으면 문어가 쓱 들어와 자리 잡는다. 바위틈과 같은 곳을 좋아하는 문어의 습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이 한 개의 단지에 한 마리의 문어만 들어간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뒤 단지가 매달린 줄을 배 위로 끌어올려 단지에 들어간 문어를 끄집어내 잡는다.

 

 그런데 이 문어를 몇 년 전부터 낚시로 잡는 것이 성행이다. 원래 서해에서 좀처럼 잡히지 않던 참문어가 최근 2,3년 사이 엄청 잡히고 있다. 주꾸미의 메카였던 서해의 선상 주꾸미 낚싯배들 상당수가 급기야 문어 낚시로 전향하는 기 현상마저 일기도 했다. 9월에서 11월이 주꾸미와 문어 낚시의 피크 시즌이다.  

 

 문어는 최상위 포식자다. 다 먹어치운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단단한 조개도 까먹고, 갑각류인 게도 좋아한다. 심지어 문어끼리 잡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문어를 잡으면 망에 따로따로 한 마리씩 담아야 한다. 낚시로 잡은 놈들을 같이 두었다가 그새 큰 놈이 작은놈 다리를 먹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나중에 보니 같이 담아둔 작은놈의 다리 하나가 뜯어 먹혀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러한 엄청난 먹성의 문어 습성을 공략하는 것이 문어 낚시다.


잡아 올린 문어 입에  뜯어먹다만 장어가 붙어 있었다. 장어를 씹던 와중에도 눈앞에 또 다른 먹잇감이 나타나자 덮친 것이다.


 문어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에기'라고 불리는 물고기 모양의 인조미끼를 쓴다. 나무를 깎아 만든 먹이라는 뜻의 일본에서 건너온 용어다. 옛날 일본에서 오징어를 잡을 때 썼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화려한 색상의 에기를 낚싯줄에 매달아 바닥에 내린다. 그리곤 낚싯대를 마구 흔든다. 물속의 에기가 흐느적거려 마치 물고기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문어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어가 물고기인 줄 알고 먹기 위해 에기 위로 쓱 올라탄다. 문어가 올라탄 것이 느껴지면 낚싯대를 힘차게 들어 올려 후킹을 시킨다. 문어 다리에 에기의 날카로운 바늘이 찍혀 끌어올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문어 다리를 찍어 걸어 올린다


 바다낚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 숨겨진 보석 같은 아름다운 섬들을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관광지인 홍도 등 다도해 국립공원의 섬들 말고도 서해와 남해에는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예쁜 섬들이 정말 많다. 낚싯배들은 포인트를 찾아서 그 섬들 곳곳을 누빈다. 더욱 끝내주는 건 섬의 한쪽 면만 훑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인트 곳곳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에 배가 섬을 따라 돈다. 그러면 낚시를 하면서 섬 구석구석을 관찰할 수 있다. 고기도 잡고 풍경도 보고, 일석이조다. 또한 낚싯배들은 대부분 해가 뜨기 전에 출항한다. 포인트에 도착해 섬 일출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는 것은 덤이다.  

 언젠가 한번 좋아하는 동생을 데리고 함께 배를 탔다. 그 친구가 낚시를 하다 문득 내게 이러한 말을 했다.


형, 평생 해안가에서 바다 수평선만 바라봐왔는데,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니 기분이 야릇하네

 

남해에는 이렇게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많다
서해의 한 무인도. 가마우지의 배변으로 인해 섬의 한쪽면이 허옇게 변했다
때로는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등대를 바로 앞에서 본다

 



 바다 위에서는 뭐를 먹어도 맛있다.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신발을 씹어도 맛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어라니.. 안 먹을 수가 없다. 문어는 보통 삶아 먹는다. 회로는 먹지 않는다. 질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에서 물을 끓여 문어를 삶아 먹기란 참으로 난감하다. 과정이 힘들고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다. 그래서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문어 히비끼'다.

 

 히비끼는 주로 벵에돔 회를 먹을 때 쓰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인데, 토치로 껍질을 살짝 태운 후 얼음물에 담갔다 먹는 방식이다. 정식 일식 요리법은 아니다. '유비끼'라는 방식도 있는데, 참돔 회를 껍질째 먹을 때 끓는 물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음 이야기 '돔'편 때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그런데, 방송 쟁이가 자꾸 일본어를 써서 참으로 마음에 걸린다. 이 용어들은 우리말로 대체하기가 참으로 어색하다. 껍질 구운 회, 껍질 그슬린 회, 껍질 데친 회?..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대체어가 없어 그냥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우리말로 대체할 순 없을지 계속 고민해 보려 한다.     

 문어 히비끼는 말 그대로 토치로 문어 겉면만 태워 익힌 후 먹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엄청 야들야들하다. 겉은 바싹 익어 탱글탱글 해 힘주어 치아를 문어 살 속으로 집어넣는 순간, 부드러운 문어 속살이 씹힌다. 겉이 태워지는 과정에서 속살은 삶는 효과가 있었나 보다. 전혀 질기지가 않다. 불맛도 난다. 더욱이 깨끗한 바닷물의 천연 조미까지 가미돼 간도 맞는다. 나의 문어 히비끼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반했다. 아직까지 문어를 이렇게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선장님들이 허허거린다.


히비끼 전용 도마를 가지고 다닌다
문어 낚시는 바닥을 훑기 때문에 가끔 손님 해삼도 올라와 준다. 잡는 순간 즉석에서 썰어 먹는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하루 종일 배에 서있으면 상당한 체력이 소모된다. 그러면 낚시의 피곤함을 문어의 타우린으로 씻어 준다. 바로 '문어 라면'이다. 나는 생다시마도 함께 넣어 준다. 향과 식감의 궁합이 잘 맞는다. 양파 또한 최대한 얇게 썰어 불을 끄기 20초 전에 넣는다. 그러면 양파의 아삭함과 문어의 쫄깃함과 라면 면발의 굴곡진 풍만함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혀와 함께 춤을 준다.


라면에 넣어 먹는 문어의 크기는 약 4,500g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그래도 문어는 뭐니 뭐니 해도 삶아 먹는 게 최고다. 그런데 문어는 도대체 얼마나 삶아야 할까? 흔히들 많이 삶으면 질겨진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살짝 데쳐야 할까? 아니다. 그건 낙지와 주꾸미에 해당하는 말이다. 문어는 사이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20분가량 삶는 것이 좋다. 손바닥 만한 작은 건 5분 정도면 되지만, (사실 놓아주는 것이 맞다) kg급 되는 건 20분 정도 삶아 준다.


 한 번은 낚싯배의 어느 사무장이 압력밥솥에 삶아 보라고 권해 주더라. 압력 밥솥이 '치키치키' 울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1,2분 간만 뜸 들인 뒤 김을 빼준다. 그러면 몇 킬로 이상 나가는 문어도 그렇게 부드러워질 수가 없다. 취향에 따라 식감이 있는 게 좋으면 그냥 삶고, 질긴 것이 싫으면 압력 밥솥을 추천한다.  


문어 꽃이 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잡은 문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낚시 꾼들은 아이스박스에 바닷물을 채워 얼음과 함께 넣어 문어를 집까지 살려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좋지 않다. 올라오는 중간에 문어가 죽을 수 있다. 바닷물 속에서 문어가 죽으면 소금물을 흡수해 엄청 짜진다. 왜 흡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얼음과 함께 담아오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면 문어가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한 채 집까지 온다. 집에서 다리 하나를 썰어 봐도 피부가 울긋불긋 계속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씻는 과정에서도 빨판이 달라붙을 정도다.

 

 냉동을 할 거면 낱개로 진공 포장을 추천한다. 나는 가급적 민물에 닿지 않게 생물 채로 진공 포장해 냉동한다. 삶은 다음에 냉동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삶은 채로 냉동하면 해동 후에 살이 푸석푸석해져서 별로다. 문어 내장은 생물일 때는 통째로 삶아 먹으면 아주 고소하다. 그러나 냉동할 때는 내장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냉동과 해동 과정에서 내장이 녹아서 비려지기 때문이다.


얼음과 함께 가져온 문어. 다리를 잘라도 피부 색깔이 계속 변한다


 문어는 우리나라 바다 3면에서 모두 잡힌다. 그래서 동해, 남해, 서해 모든 바다에서 문어 낚시를 할 수 있다. 문어의 별칭은 참 많다. 참문어, 돌문어, 대문어, 피문어, 왜문어, 대왕문어 등으로 불린다.


 쉽게 구분해 보자면 먼저, 동해에서 잡히는 문어는 아주 크다. 다 자라면 20kg 이상 엄청 크게 자란다. 그래서 대문어, 대왕문어라고 불린다. 삶으면 진한 분홍빛을 띠고, 말리면 붉은색을 뗘서 피문어라고도 불린다.

 남해와 서해에서 잡히는 문어는 참문어다. 그리 크지 않다. 다 자라 봐야 최대 5kg 정도다. 돌문어라고도 불린다. 돌산대교가 있는 여수 등이 돌문어 낚시의 메카다. 돌밭에서 많이 잡힌다고 해서 돌문어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하지만 참문어가 정식 명칭이고, 왜문어라고도 한다. 동해안 피문어는 삶으면 육질이 야들 야들 하다. 반면에 서, 남해 참문어는 육질이 좀 더 탄탄하다. 질긴 감도 있다. 물론 삶는 방식과 문어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둘을 동시에 비교해 먹어본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한다.


 시즌만 되면 매일 같이 수천 척씩 떠서 문어를 잡아낸다. 많이 잡는 선수는 한번 나가서 혼자 10kg 이상씩 잡아낸다. 물론 나는 그 정도 실력은 되지 않는다. 이러다 씨를 말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이스 박스 한가득 잡는 선수들도 많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가 처음으로 내년 2021년부터 참문어 금어기를 설정했다. 6월이 본격 산란기 이기 때문에 5월 16일부터 46일 동안 잡지 못하게 한단다. 참으로 다행이다.  


군산 비응항의 새벽. 모두 문어 낚싯배다


 문어는 물속에서 생각보다 엄청 빠르게 움직이고, 상당히 영리하다. 엄청난 포식자지만 먹잇감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히 놔 버린다. 그래서 물속 문어의 습성을 읽고, 낚싯대를 흔드는 다양한 액션과 인조미끼에 변화를 줘서 공략해 결국 잡아냈을 때의 성취감은 다른 낚시 못지않다. 또한 문어는 두족류의 제왕이라고 불릴 만큼 맛과 영양도 최고다.

 

 그래서 나는 문어를 사랑한다.

 오늘 밤은 돌문어 한 마리를 꺼내, 문어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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