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즘 친구와 비슷한 풍경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어.
7월에 스케치한 것을 10월말인 요즘에야 채색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으신 아버지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지. ’
‘틈 날 때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
보기 좋았단 말 하고 싶어서
아침 일찍 출근한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전해.
어느새 월요일 다시 시작하는 일주일
하루가 삽시간에 그리고 일주일이 번개처럼 후다닥 지나가고 있어.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거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나간다는 게 쉽지 않아.
최근 들어 늘 시간이 먼저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만 분주했던 거 같아
이번 한 주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흡족한 한 주가 되길 기대하는 아침이야.
모두 건강한 한 주 보내시길~~^^’‘
아침 일찍 출근하여 대학동기들 단톡방에 메시지를 기어이 쓰고 말았다.
넘 긴 글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으면서도 자꾸 변명하듯 말이 길어지는 나의 부질없고 어리석은 욕심이 다시 많은 말을 한 듯하다
사실은 전날인 어제, 동기가 올린 유화 그림에 대해 ‘훌륭해~’라고 댓글을 단 것이 적절한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여유있는 친구의 모습을 통해 더불어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건데 그렇게 솔직한 마음은 팽개쳐 두고 ‘훌륭해’라는 말로 평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올린 동기는 그런 평가를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그림을 보고 느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즐거움을 느껴보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대화 중 언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지 늘 깨닫고 있는 내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요즘은 다만 옛말처럼 들린다. 솔직하고 따뜻한 마음들은 다 접어두고 그저 평가하려 하거나 비꼬거나 비난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는 인터넷 통신들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사람들은 아주 논리적이고 해박한 지식과 천부적 말솜씨들로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사상이나 개인의 행동 그리고 잘잘못에 대해 마치 의무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비난하고 있다. 그것이 옳은 사회참여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보여지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따져보면 그 상황은 잘못된 해석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러한 오류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는다.
기다리거나 좀 더 지켜본다는 생각은 아예 잊은 듯 더러는 우리들의 처세가 성급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주의 깊게 들으려는 경청의 자세를 망각하고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문득 떠오른 내 생각을 전하려고 말을 가로채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의 내 마음은 스스로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욕심과 그 생각을 잊을까 봐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 속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말의 톤도 부드럽지 못했고 속도도 빨라서 마치 화가 났거나 분노한 사람 같을 때가 많았다.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다 보면 그런 실수가 보여지는 것 같다.
또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내 생각을 전하느라 상대에게 말 할 기회를 빼앗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고는 늘 헤어질 때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미안하다. 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식의 변명을 늘어 놓곤 했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은 나와 가까운 가족과 동료의 냉정한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가족은 나의 그러한 태도에 큰 실망을 했고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료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 분야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식으로 표현을 했다. 나는 이러한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음에도 스스로의 대화습관을 수정하지 못했다. 늘 타인의 발언권을 자르고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 안달하는 서툰 대인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나의 과오들이 큰 것 같다. 또한 그러한 나의 실수와 과오를 나의 성격이라고 말하며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의 행동이 얼마나 미성숙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고 올바른 언어습관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을 수정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언어습관이 만든다. 나의 언어가 나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내 안에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언어습관을 키우려고 노력했어야 한다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한번쯤은 되돌아보고 싶었던 언어습관이었다. 나의 언어습관은 고스란히 나의 꿈과 나의 일 그리고 대인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말을 줄이고 경청하는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해서 내게 말을 건낼 때, 진지하게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그 눈빛이 말하는 사연을 놓칠세라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겠다. 들어주는 척 늘 내 생각에만 몰입했던 성숙하지 못했던, 그리고 가르치거나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개선하려했던 나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어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성급히 가려하지 않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경청의 길을 가는 것을 새롭게 꿈꾸어 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