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우주를 창조한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우주를 창조한다

우울과 자신감 상실같은 부정적 사고들이 마치 방치된 쓰레기 더미에서 알을 까서 우글거리는 벌레들처럼 나를 침범하고 장악하려던 순간 내 인생의 책이라 할 수 있는 ‘The Secret’이 눈 앞에 보인 것 또한 우주의 강력한 끌림 작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나를 신뢰하며 긍정의 하루를 보내기를 약속한다.

‘저녁은 몰락으로 가는 길이지만 동시에 다시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른다는 희망이 있는 시간이다.’는 말을 떠올리며~~~

며칠 전부터 마음 준비를 했다. 작품을 발표해도 좋은 지, 나의 작품이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또는 함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나의 부족한 그림이 누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참으로 컸다. 처음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마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였다. 나의 학교에는 매화제 축제가 있었고 시와 그림은 따로 학교 밖 지역의 문화원에서 전시를 하곤 했다. 당시 나에게는 문화원 전시장에 나의 작품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었는지 모른다. 1학년 때였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교실의 창문을 바라보며 시를 썼다. 나의 심상은 내리는 빗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고, 그 당시 읽고 있었던 책들 속에서 의문하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 희망과 절망에 대한 통쾌한 나 나름의 결말을 쉼없이 쏟아지던 굵은 장맛비속에서 찾았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단숨에 써 버린 그 시를 같은 반 문예부 친구에게 보여 주었고 그 친구로부터 문예부 선배를 소개 받게 되었다. 선배는 문예부 담당 국어선생님을 찾아 가 보라고 했다. 선생님은 나의 글을 읽어 보시더니 곧장 전시회에 작품을 올리라고 하셨다. 나는 거부당하지 않고 수락된 것이 나를 인정해 주신 거라고 생각했다.

시는 미술부 학생들이 그림을 넣어 액자를 만들어 주었는데 나는 미대에 다니는 언니가 해 줄 거라고 스스로 하겠다고 했다. 마침내 문화원에서 전시가 시작되었고 나의 작품이 벽에 걸린 걸 보았을 때 나는 초라한 나의 액자와 단숨에 써 버린 시의 구성과 내용에 부끄러웠다. 도무지 시라고 명명하기가 부끄러운 고백 한 편이 짙고 어두운 블루 칼라의 화판에서 작고 고집스런 글씨체로 써 있었다. 배경색은 언니가 넣어 준 것이고 글씨는 내가 붓으로 직접 쓴 것이었다. 미술부 학생들의 도움으로 올려 진 액자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 곳에서 참 이질적이고 낯선 작품 하나가 나의 것이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따끔해지고 누가 읽고 난 뒤 보잘 것 없다고 흉이라도 볼까 봐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사실 그 때 역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학교폭력, 왕따, 은따 같은 상황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친구들과 선배 그 누구도 나를 흉보지 않았다. 오히려 축하해 주었고 부러워 한 친구도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글을 전시하는 내가 대견스러우셨는지 엄마와 함께 직접 그곳을 방문해 주셨고 교복을 입은 나와 문예부 담당 선생님이신 반00 선생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내 흡족하지 못해 전시 첫 날 이후 끝날 때까지 문화원 방문을 하지 않았다. 문예부 친구들은 어떤 남학생이 방명록에 몇 장의 긴 글을 써 놓고 갔다며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랬는지 그 모든 것들이 두려워서 그 곳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문예부 작품 전시회에 대한 나의 로망을 지워 버리고 무심하게 세월을 보냈다. 다만 글 쓰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한 그 당시 문집에 올라 온 선배와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 좀 더 시적인 표현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 당시의 나의 글에 대한 실망감이 컸고 지금까지도 그런 것들로 인해 어딘가에 작품을 올리고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활자로 인쇄되어 내가 굳이 그 장소에 가지 않는 잡지나 신문 등에 투고하는 일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비판이나 불만도 그냥 지나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는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 또한 비판과 비난에 대해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거나 따가워짐을 느껴 그런 나의 내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욱 작품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늘 솟구치는 표현에 대한 욕구와 나의 감성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와 단짝이 된 친구들은 내가 읽어주는 나의 글을 듣거나 읽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 당시 나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해해 주고 더불어 감동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의 풋풋한 얼굴과 다소는 수다스럽고 또 다소는 새침하고, 조용하던 친구들의 모습을 오늘에 와서 떠올리니 다시 그 때로 돌아간 듯 마음이 설렌다.

증평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미옥은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지이다. 그녀는 나보다도 1년 이상 먼저 그림을 시작했고 그림 실력도 훨씬 뛰어남에도 나를 챙겨 주었다. 그러면서 늘 옆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점점 친한 사이가 되어 늘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서로 위로와 지지 그리고 격려를 해 주는 동지가 있어야만 슬럼프가 왔을 때 지혜롭게 넘길 수 있고 그 일을 지속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옥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서로의 진심을 나눈 상태였다. 총무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곧장 나와 가장 가깝고 먼저 전시 경험이 있는 미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의 작품을 올려도 되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미옥은 어떤 비평도 없이 언니 정도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적극 작품을 올리라고 권했다. 미옥은 한 편의 작품만 올리겠다고 했다. 나는 문득 두 편을 올리겠다고 욕심을 냈다. 이런 결정은 나 스스로에게는 예정된 나만이 알고 있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발표에 대한 기대가 포함된 결과다.

전시 첫 날, 미옥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샤브샤브 음식점에서 아주 흡족한 저녁 식사를 했다. 미옥은 연신 맛있다며 다음 식사도 이곳에서 하자고 말했다. 우리들의 작품은 성모병원의 한 복도에 전시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번 가 보자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문화원 전시 기억이 떠올라 많이 두려웠지만 또한 궁금하기도 해서 식사를 마친 후 함께 성모병원으로 갔다. 코로나19로 문이 개방되어 있는 지도 의문사항이어서 우리는 혹시 못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그 곳으로 갔다.

때마침 문이 개방되어 있었고 우리는 곧장 작품이 전시된 복도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작품이 가장 초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초반 수강생들의 작품도 많이 올라 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에 내가 그렸던 데생과 간단한 꽃 그림들과 현재 전시되어 있는 다른 수강생들과의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그린 사람들과 나보다 훨씬 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내가 보기에 나의 수준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작품들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가졌던 우려가 얼마나 지나친 우려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의 그림은 나름 멋진 그림이 되어 걸려 있었다. 특히 모과가 실제 나무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림 지도를 해 주시는 교수님이나 7,8년 이상 그림을 그려오신 선배들의 격려와 칭찬도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감추려하지 말고

뒤로 숨으려 하지 말고

드러내라

스스로의 간절한 바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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