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참 많은 사람이다



나는 꿈이 참 많은 사람이다.

은퇴 후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할 수 있는 한 시집도 내고 에세이집도 내고 소설이나 동화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여가 시간에는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3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퇴근 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이 또한 모든 것은 바라는 대로 되는 법이라는 생각을 증명하는 일이 되었다.


내가 수채화를 배우겠다는 꿈만 꾸고 기관 검색을 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내가 전시회에 그림을 내 놓을 수 있었을까. 그림을 그린다고 내가 그린 그림 사진을 대학 동기들 단톡방에 올릴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은 꿈꾸었고 시도한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생각이다. 약간의 아쉬움은 좀 더 젊었을 때는 왜 그런 일을 시도해 보려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다.


선구자 또는 앞서 간 사람들, 본받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바람과 생각을 남보다 조금 더 일찍 또는 곧장 치밀한 계획하에 반드시 실천해 나간 사람들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실행하는 일~~그러니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시간과 일의 분배를 정확히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을 많이 미뤘던 한 사람이다. 그 미루는 과정에서 경제 사정이나 시간적 여유 혹은 가장 가까운 타인을 등장시켜 그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변명해 오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늘 불만족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배경이 누구누구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는 무책임한 나를 직시하게 된 것이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삶의 불만족을 타인 탓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다. 글쓰기와 독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혼 후 10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나의 모든 작품들을 재활용 쓰레기장에 던져 버렸다. 그것은 두꺼운 대학 노트에 깨알같이 메모했던 나의 독서 노트인 동시에 글쓰기 노트 그리고 일기장들이었다. 어쩌면 20대의 나였던 그 것을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의 불만을 덜어주기 위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소리에 화가나서 그냥 생각없이 버려 버린 것이다. 그 후 나는 한탄과 원망만 일삼았고 나의 삶에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사색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의 이름 석 자를 써 놓고,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런데 그 때 나는 스스로의 질문에 아무 답변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내가 없었다. 하나도 단 하나도 나인 것 같은 내가 없었다. 그것도 나인 것이지만 간절히 원했던 소망했던 나는 거기에 없었다. 내가 없는 나, 실종된 나의 수많은 습관들이 갑자기 그리워졌고 그것들을 다시 찾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감성적인데 그 감성적인 게 돈 벌어 주느냐고 말한 사람의 말 따위에 내 모든 걸 포기하고 버렸던 나의 어리석은 결정과 판단이 그제서야 잘 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책 읽기를 거부했던 나는 책 읽는 모습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사람 앞에서 화가 나서 내 마음의 간절한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렸다. 그렇게 멍청하게 살았다. 어쩌다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난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었다. 독서습관이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살았다. 그러한 나를 스스로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에 글을 썼다는 사실만 기억했고 그것이 나의 특별한 재능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사춘기적 감상이 나에게 글을 쓰게 한 것이고 나의 사춘기는 이미 지났으므로 글을 쓸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에 쓴 글들이 그저 사춘기적 감상이었다는 사실로 참으로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글쓰는 방법마저 아니 그 감성을 모조리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그 길에 있다

간절히 소망했던 나의 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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