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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이올렛 Oct 13. 2023

한달만 싱글로 살아보기

2019년 7월 25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약 한 달 동안 비자발적 싱글 라이프를 즐겼다. 토끼 같은 두 아이와 듬직한 남편을 한국에 두고 나 홀로 이국땅에서 혈혈단신으로 얼마간을 지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너무도 설렜다!!! 이게 얼마만의 자유인가? 그동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늘 꿈꿔왔는데 드디어 장장 한 달 동안 나 혼자의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었다. 주말엔 늦잠을 자고, 혼자 느긋하게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고 책도 읽고. 생각만 해도 숨통이 틔는 것 같았다. 물론 한국에서 업무와 육아에 고군분투할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명언은 우리 남편과 나 모두에게 지금 바로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래, 비자발적으로 선택된 독신 생활! 피할 수 없으니 마음껏 즐겨주마!!     


우선, 생활의 이동반경을 넓혀줄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해놨다. 베이징에서는 자가용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과 공유자전거 등록부터 시작했다.  

베이징 시내 거리 곳곳에 공유자전거가 세워져있어 적은 돈으로 손쉽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우선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피부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공유자전거를 하나 선택해 천안문까지 슬슬 달려봤다. 숙소가 있는 왕징에서 천안문까지는 약 17킬로미터이다. 7월 말 8월 초의 베이징 여름 날씨는 30도를 웃도는 아주 건조한 날씨였다. 가만히 있어도 더워서 지치는 날씨였지만 그땐 더위도 잊고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베이징을 활보했다. 이어폰에서는 북경 출신의 중국 가수 왕페이(王菲)(의 ‘몽중인(夢中人)’이 흘렀다. 가볍게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둘러본 베이징은 천안문을 중심으로 한 2환 안쪽은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15년 전인 2004년도 여름,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잠시 베이징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이 생애 첫 중국 여행을 위해 베이징에서 나와 접선하기로 한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우리는 그때 밤늦게까지 창안제(長安街)와 왕푸징(王府井) 거리를 거닐었었다. 시원시원하고 널찍한 창안제와 도로 양옆으로 드라이하게 세워진 직사각형의 건물들은 강산이 한번 바뀐다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시절 그대로였다. 왕푸징은 거리에 여러 기상천외한 꼬치를 팔던 노점상들이 자취를 감추어 2004년도에 비해 많이 깨끗해졌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건물들은 그대로였다. 당시 친구들과 중국에도 이렇게 세련된 대규모 쇼핑몰이 있구나! 라면서 문화충격 받았던 신천지(新天地) 쇼핑몰도 그대로였다. 2011년도 신입사원 해외연수 때도 베이징에 왔었다. 그 당시 동기들과 신나게 쇼핑했던 짝퉁 시장, 수수가(秀水街)는 리노베이션을 해서인지 더 깔끔해졌지만, 손님들은 그때보다 줄어든 듯했다.      


다시 자전거를 페달을 힘차게 굴러 천안문 동역까지 도착했다.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자전거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 자전거를 반납하고 걷기 시작했다. 천안문 광장에 들어가기 전 외국인은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여권을 보여주고 간단히 소지품 검사를 한 뒤에야 천안문 광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보통의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기 모여있는 사람 중 일부는 천안문과 자금성 관광이 ‘인생 여행’ 그 자체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천안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중국국가박물관이, 뒤로는 모택동 주석 기념당 등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았지만, 그냥 천안문 광장만 구경했다. 앞으로도 이곳에 올 일은 많을 것이며, 아이들과 같이 박물관 구경을 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부임하고 반년 뒤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임 전까지 박물관 구경이 불가능했다.      

천안문 광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인민영웅기념비와 인민대회당. 비가오는 날에도 관광객들로 붐볐다.


전문을 향해 더 남쪽으로 걸어가니 동교민항(東交民港)이라는 아름다운 거리가 나왔고 베이징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성당이 하나 보였다. 동교민항 성당이었다. 1901년 프랑스인들이 세운 성당으로 베이징 시내에서 한국인 미사가 가능하다고 들어 그 뒤에 아이들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동교민항은 과거 프랑스 대사관 등 외국 공관들이 들어섰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동교민항의 모습. 동교민항 성당(미카엘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다시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자금성 오른쪽의 후통(胡同)을 거닐다가 고궁박물원 근처의 고궁 각루 커피라는 곳을 들렀다. 매장 전체가 중국의 명화 중 하나인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로 도배가 되어있었고, 영화 <마지막 황제>의 OST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다시 공유 자전거를 구해 숙소로 돌아오니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자금성 뒷편에 이쓴 고궁 각루 커피 전문점. 고궁을 소재로한 각종 굿즈도 판매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크고 먹음직스러운 전병 하나와 칭다오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와 중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봤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외로움이 휩싸였다. 한 달 동안의 싱글 라이프를 고대했던 것이 무색해지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기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되어 아이들이 보고 싶고 집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첫 번째 해외 파견지였던 중국 우한에서의 생활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곳 환경 때문에 당시에 3살 밖에 안 된 첫째를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서 주재원 생활을 하던 힘들 시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그리움과 우울감이 순식간에 의식 저편에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아이들이 오려면 한 달이나 더 남았는데…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한 달 동안 싱글로 베이징 생활을 즐기자는 다짐과 불현듯 찾아온 그리움과 외로움은 무시무시한 업무량에 압도되어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곧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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