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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이올렛 Oct 16. 2023

워킹맘 주재원의 현지 생활 정착기 1편 – 집 구하기

싱글 라이프를 즐길 새도 없이 폭풍 같이 몰아치는 업무와 아이들과 함께 할 생활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일들이 철문처럼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베이징의 동서남북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조금씩 힘을 내서 문을 두드리고 열어젖히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우선, 업무는 최대한 업무시간 내에 끝내려고 노력했지만, 업무가 끝난 뒤 이어지는 각종 저녁 자리와 잦은 야근으로 주중에는 밤이 돼서야 귀가하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최대한 주말을 이용하되 어쩔 수 없는 경우엔 반차 등을 활용하여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우선 나의 경우엔 집 구하기를 이미 한국에서 끝내고 온 상황이라 부담이 훨씬 적었다. 2019년 여름, 한국인 주재원들이 주로 밀집해 사는 베이징의 왕징(望京) 지역은 주택 매물이 거의 없었고 가격도 많이 오른 상황이었다. 현대자동차가 중국 사업에 다시 한번 집중하며 한국에서 주재원을 대거 파견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주택수요가 몰리니 매물이 나오는 즉시 없어졌고 주택 임차료 역시 평소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어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파견 나오기 전에 전임이었던 선배 워킹맘이 살던 집을 그대로 승계 입주하기로 했다. 직접 보고 결정했다면 좀 더 좋았겠지만, 나랑 같은 처지인 워킹맘이 살던 곳이니 나에게도 맞겠다고 단순히 생각하고 큰 고민 없이 승계 입주를 선택했다. 덕분에 집 구하기라는 미션은 파견 나오기 전에 이미 클리어한 셈이다.     

베이징에서 살던 집의 현관. 퇴근을 하고 집 현관문을 열면 아이들이 방과 거실에서부터 다다다다 달려와 이곳에서 나를 꼭 안아주던 공간이다.

전임자로부터 주택 임차를 승계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는데 경험한 사람들은 단점을 더 많이 꼽는 것 같다. 보통 전에 살던 사람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후임자가 그 계약을 이어받다 보니, 보증금, 주택의 하자 등 부분에서 확실하게 소통이 되고 정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살던 사람이 좋은 집이라고 추천하더라도 나와 생활방식이나 취향 등이 맞지 않을 땐 사는 내내 후회하기도 한다. 따라서 집을 구할 땐 승계 입주는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서 결정하고 되도록 직접 집을 보고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엔 빠르게 승계 입주를 결정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해외에서 집을 구할 땐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를 좁혀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집의 위치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거주할 것인지,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등하교 버스 노선에 포함된 곳인지, 회사와의 거리, 임차료 수준, 주변 편의시설 및 대중교통 사용 시 편리성 등등.      


우선,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일 경우 장단점을 꼽아보고 내 성향과 맞을지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한국인들이 많다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 통하고 좋은 이웃을 만난다면 급할 때 도움을 받기도 더 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사생활이 많이 노출되어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특히, 주재원 가족 간에 얽히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옷 가게에서 한국인 여성 둘이서 싸움이 났는데 알고 보니 양쪽 남편들이 한 직장의 상사와 부하 사이었고, 이 일로 한쪽 부부 사이가 완전히 갈라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애들 간의 갈등이 주재원 간 갈등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흔한 일은 아니고 보통은 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는 것 같다.      

두 번째는 통학버스 노선에 포함된 곳인지를 봐야 한다. 같은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이라고 하더라도 통학버스가 노선에 속한 단지가 있고 그렇지 않은 단지가 있다. 만약 내가 자가용으로 아이들 라이딩을 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처럼 아침에 아이들 등교와 동시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통학버스 노선에 속한 단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통학버스 노선에 거주하는 단지가 속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측에 요청은 할 수 있지만, 나의 요청이 관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예 통학버스 노선이 속한지를 먼저 파악한 뒤에 거주할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다음 회사와의 거리다. 다행히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왕징에 있어서 이 부분도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회사가 멀리 있는 경우엔 출퇴근에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특히, 베이징의 교통 체증은 다른 대도시처럼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집을 고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주변에 대형 상점, 각종 병원, 학원 등이 있는지, 대중교통은 편리한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때 한국인들이 잔뜩 몰려있는 왕징이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해외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잘 안 들어 거주한 지 일 년 만에 한국인이 많이 살지 않은 도심으로 집을 옮겨볼까도 고민한 적이 있었다. 결국 이런 직주근접, 통학버스, 여러 편의시설 등의 편리성 때문에 왕징을 벗어나지 못하고 3년 내내 거주했다. 다시 베이징으로 파견 나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도 아마 왕징에서 거주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내부 모습.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나무가 많이 심어져있어 계절마다 멋있는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럼 집은 어디서 구할까? 베이징의 경우, 주재원들은 주로 조선족이 운영하는 부동산을 이용한다. 발령이 남과 동시에 회사 베이징 지사에서는 바로 조선족 부동산업체 담당자와 나를 이어줬다. 왕징지역의 주요 아파트 단지들을 소개하고 임차 시 주의할 사항들(전기요금, 난방요금 내는 방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를 배포해주기도 했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언어가 통한다는 점이다. 중국어를 못해도 집을 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임차해 사는 기간 내내 사후관리(A/S)를 수시로 해주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 주재원들이 조선족이 운영하는 부동산을 애용한다. 첫 파견지였던 중국 우한과 비교해보니, 베이징은 집 구하기부터 난이도가 좀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한국인들이 많으면 조금 더 편한 부분이 있다.     


중국어를 조금 잘 구사할 수 있다면, 다른 부동산도 한번 다녀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 조선족이 운영하는 부동산의 경우 한국인 주재원이 속한 회사별 주택 임차 지원금을 잘 파악하고 있다 보니 시세보다 조금 높게 가격을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리고 부동산마다 보유하고 있는 물량이 달라 좀 더 다양한 매물을 접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내가 살 집을 구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승계 입주를 결정했기 때문에 베이징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입주가 가능했으나, (이것 또한 승계 입주의 큰 장점이다) 보통의 경우 2주~4주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그동안 꼼짝없이 호텔 생활을 해야 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집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보통은 집을 먼저 구해놓은 다음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집들이 많다.     


현지 생활 정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살 집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물어보고, 직접 보고, 비교하는 수밖에 없지만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계약을 주로 1년 단위로 하기때문에 살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집으로 이사하면 된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다보면 스트레스가 된다. 해외에서 사는 일은 내맘처럼 흘러가지 않는 듯하다. 가끔은 살짝 힘을 빼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정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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