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는 뭔가를 만들 것(1)

by 보라구름

우울과 무기력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까? 바스러질 것 같은 낡은 쿠킹포일 조각 같은 멘틀이 갑자기 무쇠 멘틀로 바뀌는 기적을 바라는 대신, 조금씩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실현 가능성이 높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두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상의 목표를 몇 개 찾았고 80%에 가까운 실천을 함으로써 나름 만족하고 있다. 그중에 첫 번째가 무엇인고 하면...


피부관리다. 타고난 피부가 민감성이고 홍조가 있으며 피부가 얇은 편인 반면 기미 잡티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고, 뾰루지 같은 것도 거의 나지 않는 편이다. 피부가 좋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으면 피부라도(?)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내가 가진 좋은 것을 그냥 내버려 두면 타고난 좋음도 어느새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잘 관리하자는 의미로 피부관리를 첫 번째로 매일 하는 뭔가로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다.


매일 잠들기 전 세안을 꼼꼼하게 하고 나이트 케어를 하자!
좋은 스킨을 쓸 것(피부에 처음 바르는 것이니), 1일 1팩을 할 것(마스크 시트팩을 잠들기 전 매일 하기, 너무 피곤한 날은 바르는 팩이라도), 아이크림과 크림을 챙겨 바를 것.


평소에도 피부관리를 한다고 이런저런 제품을 사기도 하고 마사지 샵도 끊어 다녀보곤 했지만 도무지 그걸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제품이 수두룩하고 선금으로 낸 마사지샵은 예약 후 취소하기를 반복.. 그래서 내가 나에게 매일 스킨케어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별 차이가 없는 건데 매일 나를 위해 스킨케어를 하면서 이런 마음을 갖는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힘들었지? 피곤하면 피부 상하니까 일단 마스크팩 붙이고 누워서 좀 쉬자. 편하게 누워서 촉촉해지는 피부처럼 마음도 촉촉해지자!


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저런 마음으로 나를 위해 내가 케어를 해준다는 마음을 가져보니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아, 귀찮아 그냥 누워서 잘래. 이런 마음이 들면 내가 나에게 위에 적은 대로 말을 건넨다. 내가 나를 일으켜 세워 세면대에 세우고 세수를 하고 스킨을 바르고 붙일 마스크팩을 고르는 거지만 다 귀찮다며 짜증을 품고 피곤에 절은 채로 자려는 나와 고생한 나를 깨끗이 씻기고 팩을 붙여 케어하려는 나는 다른 나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의 내가 또 하나의 나를 책망하는 태도에서 달래주고 이해하는 태도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게으름 피우면 피부 좋다는 소리도 못 듣게 될 걸?(협박)
씻지도 않고 잔다니 기가 막힌다.(빈정거림)
그렇게 그냥 잘 거면서 저런 화장품들은 돈 아깝게 왜 산 거냐?(비난)
vs
이렇게 그냥 잠들어버리면 고운 피부 상한다니깐~(걱정)
아이고, 얼마나 힘들면 그래 씻을 기운도 없이 쓰러져 잠이 들까. 정 피곤하면 일단 눈 좀 붙여. 그리고 정신 좀 들면 그때 씻자.(이해, 협상)
이렇게 잠들어버리면 저기 화장품도 그냥 잠들어버리잖아. 아깝지 않아? 조금만 힘내서 씻고 쟤들(화장품) 깨우자.(설득, 제안)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고, 타이르거나 지적질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내가 나에게 이해와 수용을 해줌으로써 잘 달래어 토닥토닥해줄 수 있는 데까지는 온 것 같다. 다름 아닌 데일리 스킨케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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